집 근처 뜨개 카페 ‘토요’에 와 있다. 그림 그리는 친구 최산호, 매수전 작가와 함께다. 어쩌다 보니 그 둘이 내게 뜨개질을 배우게 됐다. 셋이 모여 시도 안 쓰고 그림도 안 그리고, 다름 아닌 뜨개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나도 누굴 가르칠 만한 실력은 아닌데 괜찮을까? 목도리도 뜨고 모자도 뜨고 조끼도 뜬 적이 있지만,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고무단 뜨기를 먼저 했던가 나중에 했던가?’ 기억을 더듬어보는데, 오래전 두고 온 시간이 털실처럼 만져진다. 그러고 보니, 흘러가 버린 시간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실감하게 하는 뜨개질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뜨개질 장면이 있다는 건 현재의 나를 위해 과거의 내가 아껴 둔 에너지바 같은 걸지도 모른다.
앞에 앉아 바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두 사람에게 우리가 함께 뜨개질하고 있는 이 순간을 고이 싸서 아껴 두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뜨개질을 말린 게 생각나서다. “그림 작가가 그림은 안 그리고 뜨개질이라니, 얼른 그림 그리세요!” 충고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수전 작가는 새로운 전시를 앞두고 있었고 최산호 작가는 마감에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넘겨야 할 원고를 잠시 팽개쳐 둔 상태였다.
뜨개질 때문에 그들이 아무것도 못 할 거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비껴갔다. 매수전 작가의 전시는 성황리에 열렸고 최산호 작가도 아슬아슬 마감 기한을 맞췄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다. 다 쓴 원고를 붙들고 앓고만 있으니 말이다. 결국 난 뜨개질도 안 했는데 시도 못 썼다. 청소년 시를 58편이나 써놓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 넘길 수가 없다. 자가 검열의 빈도만큼 시가 좋아졌으면 좋겠지만, 시만 보면 한숨이 푹푹 나왔다.
며칠 전에는 남편과 엉킨 실타래를 푸느라 애를 먹었다.
“가위로 자르면 안 돼?”
“안 돼. 매듭 생겨.”
“그거 아무도 몰라.”
“내가 알잖아.”
다른 사람은 다 속일 수 있어도 나를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섭다. 그 무서운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해도 나는 아직 충분하지 않은 일들이 있고 인간이 그런 존재라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옥신각신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실을 푸는데 영어학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한마디 한다.
“둘이서 뭐해요? 오늘따라 더 사이가 좋아 보여요.”
엉킨 실타래 때문에 낑낑대고 있는 우리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그리 보이기도 하겠다 싶어 웃음이 터졌다. 지금이라면 어떤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소중한 이들과 마음을 주고받는 장면들이겠다.
친구들과 찾은 이월의 제주엔 눈이 많이 왔다. 게다가 여행 첫날부터 배탈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바람이 엉킨 것만 같았다. 마음이 엉키니 모든 것이 엉켜 있다. 몸을 움직이기 싫었다. 그래도 엉킨 걸 풀려면 한 발짝씩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무작정 봄눈 내리는 둘레길을 걸었다. 나는 풍경의 바깥이 아니라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파도치는 것을 한참 앉아 바라보다가 마을 돌담 위에서 바람이 회복하는 순간을 목격한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나이고 감옥이면서 해방의 장소다. 어느새 두통은 사라졌고 논두렁과 밭두렁 사이를 밀고 나오는 쑥과 냉이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시집 원고도 한 단어 한 구절씩 고치다 보니 어느새 끝이 보인다. 2월 제주 바다는 지금 몸을 바꾸는 중이다. 추위와 바람에 엉켰던 겨울 바다는 곧 물고기들이 와 산란하는 순간 맑고 푸른빛으로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