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생일 선물 나누기

3 days ago 1

[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생일 선물 나누기

초록이 한층 더 두꺼워지고, 장미가 오면 완연한 6월이다. 모내기해놓은 모가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는 6월, 농사철에 나는 태어났다. 우리 집은 산 밑에서 소 두 마리를 길렀고, 나는 뽕나무에 매달려 입이 새까맣도록 오디를 따먹었다. 생일상도 생일 선물도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 유년의 생일들. 미역국이야 먹었겠지만, 생일 케이크가 없었다. 촛불을 분 적이 없다는 건 누구도 나를 위해 노래 부르거나 손뼉 치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래서 나는 생일을 몰랐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생일은 엄마가 친구를 데려오라고 해서 건너 마을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집으로 갔는데, 철제 소반 위에 쿨피스와 빵이 있었고 그걸 친구와 나눠 먹었다. 그리고 친구와 놀다가 헤어졌다. 그랬을 뿐인데 엄마는 그날이 내 생일이라고 했다. 그 황당한 기억 때문에 나는 생일에 한이 맺힌 모양이다. 6월만 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생일을 보내기 위해 썼다. 생일이 아니라 생월을 보냈다.

생일이 가까워져 오면 친구들은 내게 묻는다. 갖고 싶은 게 뭐냐고. 생일에 대해서라면 망설임 없던 나지만, 생일 선물을 물으면 선뜻 떠오르는 게 없을 때가 많다. 왜 그토록 많았던 필요한 것들이 질문을 받자마자 절묘하게 사라지는지…. 질문한 사람의 형편과 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가늠하는 동안 상대에게 내가 요구할 만한 것들의 목록은 하나둘 지워지고 만다.

그럴 땐 정해진 명료한 룰이 그립다. 매년 생일만 돌아오면 금액대를 정해 필요한 물건을 사주는 건 ‘켬’ 동인 친구들이다. 올해는 토스터를 선물 받았다. 마침, 토스터가 고장 났는데 타이밍이 좋았다. 토스트를 구울 때마다 켬이 생각날 것이다. 지금 내 가방에 달고 다니는 작은 인형만 해도 그렇다. 선물해 준 사람 이름을 백번도 넘게 말하게 된다. 귀여운 물건을 보면 한마디씩 말을 걸고 그것이 내게 어떻게 온 것인지 말하다 보면 고마운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게 선물은 누군가의 냇가에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남아 기억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번 생일을 준비하느라 5월 내내 바빴다. 친구에게 조금 특별한 생일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선물은 아주 크고 요란하며 귀엽고 당당하다. 그것은 아주 여러 개의 영혼을 거느리고 내게로 왔다. 김은지 시인과 지구불시착 사장님이 함께 준비한 내 생일 선물은 다름 아닌 ‘생일 책방’이다. 은지와 사장님은 렌티큘라 포토 카드, 엽서, 포스터와 시집 속 문장 스티커까지 여러 생일 책방 굿즈를 마련하느라 애를 썼다. 생일 책방 기획자인 김은지 시인은 생일 책방 때 추천 도서가 불티나게 팔려 책방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생일 책방의 기획 의도는 그런 게 아니야. 책방에 와서 생일을 맞이한 시인을 축하하고, 선물도 받아 가고 추천 도서도 구경하고 전시 관람도 하고…. 축하하러 왔다가 오히려 축하받은 듯 행복해져서 돌아가게 하는 거야. 책도 사 가면 좋긴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거라고.”

기획 의도가 정말 멋지긴 한데, 내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생일 하면, “축하해/앞으로도 매년 태어나야 해” 오은의 ‘생일’이란 시가 떠오른다.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박수받으며 촛불을 부는 것. 몇 번이고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그 장면을 위해 나는 매년 태어나는지도 모르겠다.

한 달 내내 책방 한쪽 벽을 장식할 그림도 몇 점 더 그리고 뜨개질 소품도 하나 더 떴다. 생일, 나를 축하해주는 일이면서 내가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라는 걸 알려준 고마운 생일 책방이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