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아공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무릎 아래 다리뼈가 없다. 의족을 착용했지만 육상에 소질을 보였다. 의족은 휘어진 칼날 모양의 탄소섬유 첨단제품이다. 일반인 육상대회 출전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의족은 에너지 소모를 줄여 경기력을 향상하므로 대회의 순수성을 훼손한다고 했다. 그러나 단거리에선 근력이 중요하다. 일반선수는 발, 종아리, 무릎, 허벅지, 엉덩이 등 모든 근육을 쓰지만 의족을 한 선수는 허벅지, 엉덩이 근육밖에 쓰지 못해 불리하다. 2008년 스포츠중재재판소는 의족을 착용하고 일반인 국제대회에 참여할 수 있다고 판정했다. 의족 성능이 인공지능(AI) 활용과 고탄력 금속으로 고도화되면 어떻게 될까. 의족을 한 선수들이 상위권을 차지해도 될까. 새로운 규정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선수가 약물을 복용하는 도핑은 금지된다. 금지약물을 통해 경기력을 향상하면 경쟁의 공정성을 저해한다. 선수의 생명이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생명,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고 경기력만 향상하는 신약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한계를 뛰어넘는 경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간과 AI가 결합된 슈퍼맨의 탄생을 기다리며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을 썼다. 영생의 기술이 나타나길 고대하며 그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알약을 먹고 자신을 극저온 냉동할 계획도 있다. 기술발전은 인간이 만든 '기술적 대상'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킨다. 도구, 기계는 사람의 몸밖에 존재하지만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이어폰은 휴대물품이 됐다. 의수, 의족, 렌즈 등은 우리 몸에 부착되고, 인공심장, 인공혈관 등 인공장기는 몸속에 자리를 잡았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는 사람의 머리에 칩을 심어 컴퓨터 등 첨단기기를 조작할 수 있게 했다. 기술혁신은 영원한 젊음과 안락한 삶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기술적 대상을 넘어 인간마저 물리적으로 개조하는 세상이 올까. 그래도 될까.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의 철학적 배경에 '트랜스휴머니즘'이 있다. 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극복하고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자는 철학이다. 1957년 생물학자 줄리안 헉슬리는 인간을 유지하며 인간을 초월할 수 있다며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 전 '휴머니즘'은 동양에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이 옳고 그름을 판단해 행동으로 실천하는 인본주의를 의미했다. 서양에선 중세를 극복하여 인간을 재조명하고 문화부흥과 기술문명을 강조했다. 휴머니즘은 인도주의, 박애주의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인간중심의 이분법적 사고를 낳아 전쟁, 환경파괴, 빈부격차 등 문제를 낳고 정당화하기도 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휴머니즘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자연과 공존을 모색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휴머니즘을 이어받거나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기술혁신을 활용한다. 육체, 정신 강화를 넘어 낙후된 문화, 제도를 혁신하자고 한다. 기술혁신을 위해 낡은 질서와 기득권을 뒷받침하는 법령개선과 규제완화를 외친다. 산업과 시장이 정체되고 성장하지 못하면 갈등과 분쟁이 격화된다. 성장페달을 계속 돌리려면 수단이 되는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우리가 AI에 목을 매는 이유가 그것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AI에이전트, 피지컬AI, AI자율주행 등 AI 관련 기술 확장을 통해 인간을 초월한 시대를 열려고 한다.
문제는 없을까. 기술혁신이 경제의 성장과 생활의 편리함을 주지만 인간의 자아실현에도 도움이 될까. 노화가 늦어지고 건강이 좋아진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기술혁신으로 노동을 대체하면서 일자리와 소득이 줄면 갈등과 분쟁이 격화된다. 자본주의가 품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조차 과학기술로 해결하긴 쉽지 않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혁신만 뒷받침할 것이 아니라 기술혁신의 폐해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혁신이 만능열쇠가 아님을 자각하고, 인간과 기술의 공존을 모색하며, 인간의 역할을 고민하는데서 시작점을 찾아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