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54〉혁신의 성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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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1932년 1월 '기노시타 쇼조'는 도쿄경시청 앞에서 히로히토 천황 행렬에 폭탄을 던졌다. 천황의 마차를 놓쳤으나 뒤따르던 마차에 명중했다. 폭발력은 약해 약간의 부상을 입히는데 그쳤다. 일본검사는 수사결과를 남겼다. “범인은 1928년 11월 천황즉위식에 축하하러 왔다가 주머니에서 한글편지가 발견돼 체포, 구금된 것에 불만을 품었다. 중국 상하이 '백정선'을 찾아 자금과 폭탄을 지원받고 범행을 저질렀다.” 젊은 시절 뼛속까지 일본인으로 살려 했던 그는 반역죄로 처형됐고 검찰조서에 자신의 이름을 기노시타 쇼조 대신 '이봉창'으로 적었다. 그의 의거는 성공일까 실패일까. 천황암살을 기준으로 하면 실패다. 조선독립을 기준으로 하면 성공이다. 그의 의거에 감화된 윤봉길은 백정선('김구'의 활동명)을 찾았고 1932년 4월 천황생일 축하식에서 일본군 수뇌부를 폭사시켰다. 존재감 없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각국의 전폭적 지원과 함께 확고한 독립 기반이 됐다.

포스트잇은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기능성 접착제다. 그 제품만 두고 본다면 성공이다. 포스트잇의 확장성은 어떤가. 주변을 둘러보면 비슷한 제품은 마그네틱 기념품 등 몇몇 제품에 그친다. 산업현장과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기능과 형태로 발전했다면 더 큰 혁신이 되지 않았을까. 혁신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할까.

그림작가 이소연 作그림작가 이소연 作

미국 증권거래소에서 가장 큰 혁신은 뭘까. 우량기업 발굴일까. 투자자 보호일까.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시스템일까. 증권거래에 온라인, 모바일, 세계화를 활용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면 세계 어디에서도 미국 증권시장에 투자하게 만들었다. 투자위험과 불안을 낮추는 상장지수펀드(ETF) 등 다양한 상품을 내놓았다. 미국 증권시장에 세상 돈이 모이고 미국 기업에 투자된다. 증권거래에 따른 세금은 미국정부가 챙긴다. 이보다 뛰어난 혁신이 있을까.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성공의 크기를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혁신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선 대상이 되는 기간과 목표 설정이 중요하다. 단기에선 성공으로 볼 수 있지만 장기에선 실패인 혁신도 있다. 꾸준히 혁신하고 성장했지만 한 번의 위기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기업이 있다. 위기대응 및 관리능력을 키우지 않고 외형 매출과 이익만 키운 탓이다. 높고 크게 지었을 뿐 안전하지 않은 건축물과 같다. 건축물의 높이와 크기에만 가점을 주었던 목표 설정과 그에 따른 평가가 잘못됐다.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인 목표 달성에 매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손실이 누적되는 단기를 잘 견디는 것이 혁신의 크고 작은 목표 중 하나여야 한다. 대규모 플랫폼, 반도체사업은 초기에 최소 5년 내지 10년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회사의 핵심 비즈니스와 인프라를 구축하고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혁신의 핵심목표가 된다. 그것이 달성되면 단기 손실이 있더라도 실패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을 견뎌낸 기업이 아마존,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다.

그렇다. 혁신의 목표 설정은 장단기에 더해 정성적·정량적 사항까지 고려해 입체적이어야 한다. 기업이 속한 생태계에서 어떤 위치와 지위를 차지할 것인지 '포지셔닝'과 연대·협력이 중요하다. 반도체 산업에는 공정별 장비, 칩,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패키징, 단말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설계, 제조 등 분야별로 참여하는 기업의 협력과 경쟁이 중요하다. 생태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개별 기업 안에서 조직과 임직원의 달성목표와 평가기준이 설정돼야 한다.

김구가 물었다. “그대는 일본말에 능하고 그들과 어울리는데 거리낌 없다. 일본인으로 살면 되지 굳이 이 일을 하려 하는가?” 이봉창의 답이다. “일신의 쾌락이면 30년으로 족하오. 이젠 영혼의 쾌락을 누리고 싶소.” 기업에 있어 일신의 쾌락은 무엇이고 영혼의 쾌락은 무엇일까?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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