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노사갈등 치유하려 했던 교황 레오 1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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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노사갈등 치유하려 했던 교황 레오 13세

요즘 대한민국은 임박한 대통령 선거가 최대 이슈지만, 전 세계인들에게는 이달 초 누가 새 교황이 될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세계 전역에 펼쳐져 있는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들과 비신자들에게까지 교황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교황은 이탈리아 공화국에서 사실상 ‘정신적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다. 서유럽, 미국, 중남미 등 나머지 세계 지역에서도 그의 말과 행동은 큰 파급력을 갖는다.

이번에 선출된 레오 14세는 여러모로 예외적인 인물이다. 교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미국인이지만 페루 빈민가로 가서 페루 국적을 얻고 주교로 봉사한 경력 때문이다. 새 교황은 미국 출신으로 최초일뿐더러 아우구스티노회 출신으로서도 최초다. 이 수도회에는 가톨릭교회에 도전해 새로운 교파를 세운 마르틴 루터가 소속돼 있었다. 가톨릭교회는 지금까지 수백 년간 아우구스티노회 수사를 교황으로 뽑지 않았다.

새로 선출된 교황은 자신이 사용할 이름을 ‘레오(Leo)’로 선택했다. 이 이름을 마지막으로 쓴 이는 이탈리아인 레오 13세(재위 1878~1903년)다. 미국 출신 교황은 법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레오 14세’로 정한 취지가 레오 13세의 모범을 따르려는 것이라고 했다. 레오 14세는 구체적으로 레오 13세의 한 저술을 거명했다.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라는 1891년 발표한 ‘회칙’(encyclical)이다.

세계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에게 보내는 지침서 성격의 이 글이 말하는 ‘새로운 사태’는 19세기 말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혁명을 지칭한다. 산업기술 발전을 통해 축적된 거대한 자본을 소수의 개인이 소유하고 주무르며 과도한 힘을 갖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터전을 빼앗긴 농민과 기층 민중은 공장 노동자로 투입된다. 노동자 집단의 구성원이 된 이들은 비인간적 환경 속에 살며 가톨릭 신앙 등 전통적 가치관을 상실한다.

그 자리를 급속히 채우려 시도한 것은 좌파 노동운동이다. 이들은 교회와 고용주를 모두 적대시하는 사회주의 이념을 노동자들에게 주입하려 진력한다. 그리고 행여 자신들이 주도하는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거나 노조 지도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생업을 이어갈 수 없도록 강력한 압력을 행사한다.

레오 13세는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서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며 협조하는 것이 사회갈등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용주들이 먼저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노동자들의 삶과 영혼까지 지배하려 드는 노동조합의 횡포도 깊이 우려했다. 이기적 자본가가 노동자를 돈벌이 도구로 전락시킨다면, 좌익 노동운동 세력은 노동자를 정치운동의 도구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양자 모두 인간성을 파괴한다고 봤다.

레오 14세는 지금 우리 시대가 레오 13세 때보다 더 심각한 비인간화의 위협에 처해 있음을 시인했다. 교황으로서는 아직 젊은 나이인 그가 이러한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할 방향을 제시해주기를 많은 이들이 기대한다. 곧 투표장으로 갈 대한민국 유권자들도 새 대통령이 대립과 갈등에서 정치적 에너지를 섭취하지 말고 화합의 길로 이 나라를 이끌기를 염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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