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기량을 뽑아내야 하는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 골프선수들은 여러 승부수를 던진다. 그럼에도 잘 바꾸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퍼터다. 가장 예민한 클럽으로 꼽히기에 퍼터를 바꿀 때는 앞서 몇번의 대회에서 검증을 거치며 손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유해란은 지난달 28일(한국시간) 막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셰브론챔피언십을 앞두고 퍼터를 바꿨다. 기존의 일자 블레이드형에서 헤드가 넙적한 말렛형을 들고 나선 것. 하지만 이 대회에서 커트탈락하며 승부수는 '무리수'가 되는가 싶었다.
그 퍼터가 '효자'로 변신한 것은 단 일주일만이다. 유해란은 5일 미국 유타주 아이빈스의 블랙 데저트 리조트GC(파72)에서 열린 블랙 데저트 챔피언십(총상금 300만 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6개로 8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26언더파 262타로 우승했다. 자신의 투어 통산 3승, 공동 2위 에스더 헨젤라이트(독일), 인뤄닝(중국·이상 21언더파 267타)을 5타 차로 따돌린 압도적인 우승이었다. 유해란은 우승 직후 LPGA 투어와 인터뷰에서 "믿기 힘든 날이었다"며 "개인 최고 성적은 23언더파였는데, 이 기록을 깼고 사흘 연속 이글을 기록해 행복하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서 유해란은 완벽한 그린 플레이를 펼쳤다. 1라운드와 최종라운드에서 퍼터를 각각 27번씩만 잡았다. 72홀 전체에서는 퍼트 114회, 홀당 평균 1.5퍼트로 끝냈다. 그는 우승 기자회견에서 "사실 메이저 대회에 앞서 퍼터를 바꾸는 건 미친 짓이었다"며 "그래도 느낌이 좋아서 신뢰가 갔고 바꾸길 잘한 거 같다"고 만족감을 보였다.
우승에 자신감을 준 것 역시 퍼트였다. 그는 "이날 가장 중요한 플레이로 12번홀 파 세이브였다"며 "그 홀에서 어려운 파를 지켜내 평정심을 유지했고 다음 홀에서 이글도 잡았다"고 돌아봤다.
샷감도 완벽했다. 이번 대회 72홀에서 유해란은 63개홀의 그린을 지키며 그린 적중률 90%를 기록했다. 사실 지난 대회 커트탈락의 가장 큰 원인은 아이언샷이었다. 그는 "대회가 끝난 뒤 한국에 있는 코치에게 거의 매일 전화해 내 샷의 문제점을 물었다"며 "코치는 '샷에는 문제가 없다. 자신을 믿고 쳐라'고 말해줬다"고 털어놨다.
올 시즌 초반 유해란은 다소 고전했다. 첫 6개 대회에서 단 한번도 톱10에 들지 못했다. 그는"지난 겨울 폐렴에 걸려 치료받느라 시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요즘 몸이 좋아져서 좋은 샷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며 "이제 제 골프를 더 믿을 수 있게됐다. 오늘 우승은 큰 의미가 있다"고 활짝 웃었다.
유해란은 이날 우승으로 상금 45만 달러(약 6억 3000만원)를 추가해 시즌 상금을 80만 3685달러(약 11억 2700만원)로 늘렸다. LPGA 투어 통산 상금은 517만 5598달러(약 72억 5000만원)다. 이미향과 이소미, 전지원, 최혜진은 나란히 13언더파 275타를 쳐 공동 12위로 대회를 마쳤다. 김효주는 이날 6타를 줄이면서 12언더파 276타로 임진희, 안나린 등과 공동 20위를 기록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