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스 "무대보다 짜릿한 건 없어…日 시장통에서 초심 찾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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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5주년, '화장을 고치고' 셀프 리메이크…"한때 부르기 싫었던 곡"

2000년대 발라드·댄스 오가며 히트…"광내는 왁스, 잊히지 않는 이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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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5주년을 맞은 가수 왁스

[펀한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신인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지금도 무대에서 설렘이 느껴져요. 설렘 없이 올라가는 무대라면 너무 슬프잖아요. 그런 때가 온다면 음악을 그만둬야겠죠."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가수 왁스는 히트에 히트를 거듭하던 2000년대 중반, 대표곡 '화장을 고치고'를 멀리하고 싶은 시기가 있었다.

이 곡이 수록된 2집(2001)은 한국음반산업협회 공식 집계 기준으로 70만장 넘게 팔려 2020년대 블랙핑크 멤버들의 솔로 음반이 나오기까지 약 20년간 여성 솔로 최다 판매량을 지켰다.

인기에 비례해 숨 가쁘게 전국을 누볐던 그 시절 왁스는 가는 곳마다 '화장을 고치고'를 요청받았고, 결국 반항심에 "다른 노래를 하면 안 되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러던 그에게 2006년 한국에서의 인기를 내려놓고 신인으로 도전한 일본 시장은 색다른 경험을 안겨줬다. 생선 좌판이 죽 늘어선 시장통에서 진행된 어느 지역 방송의 아침 TV 프로그램 무대. 머릿속에서 '한국에서 사랑받는 가수로서 내가 호강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화장을 고치고'를 부르지 않겠다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함께 밀려왔다.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왁스는 "나는 대중가수이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게 책임이자 의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며 "일본에서 돌아오고 난 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듬해인 2007년에는 노래를 소재로 한 뮤지컬 '화장을 고치고'에도 출연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일본 소도시 시장통에서 초심을 되찾은 셈"이라며 "이후로 한국 팬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게 됐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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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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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생활을 하다 2000년 1집 '엄마의 일기'로 솔로 데뷔한 왁스는 '화장을 고치고' 외에도 '오빠', '머니', '부탁해요', '황혼의 문턱', '내게 남은 사랑을 다 줄게' 등 발라드와 댄스를 오가며 굵직한 히트곡을 냈다.

대학생 시절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 입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합숙이 부러워 음악 동아리에 들어간 게 음악과의 첫 인연이었다. 대학교 강당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펼친 소박한 무대의 '짜릿함'은 25년을 이어온 가수 생활의 원동력이 됐다.

왁스는 "통기타 서클이나 밴드 등 데뷔 전 경험한 여러 장르의 활동이 음악적 뿌리가 됐다"며 "제가 무대에서 노래하고, 사람들이 이를 듣고 있는 상황, 제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그 느낌이 무척 좋았다. 이것보다 짜릿하고 강렬한 것은 없었다"고 했다.

음악을 동경하던 시절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가수는 팝스타 휘트니 휴스턴이었다. 당시 많은 학생이 그랬던 것처럼 영어 노랫말을 한글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받아 적어가며 노래를 익혔다. 클릭 한 번으로 검색이 가능한 지금과 달리 대표곡이 아니라면 영어 가사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때다.

가수의 꿈을 이룬 왁스는 데뷔 초기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며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성 가수로는 이례적인 '왁스'(WAX)라는 예명도 궁금증을 더했다.

그는 "데뷔를 앞두고 대표님이 예명이 왁스라고 말하길래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다시 물어도 광내고 닦는 왁스였다"며 "대표님이 당시 일본 시부야 거리를 걷다가 간판에 'WAX'라는 글자를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고 뒷얘기를 들려줬다.

이어 "처음에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설득당했다"며 "대중의 귀에 확 들어오고,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이름이었다. 활동 초창기에는 '왁스처럼 내 음악에 광을 내 반짝반짝 빛을 내겠다'는 의미도 부여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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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TV 음악 프로그램에 등장해 자기 얼굴을 공개한 계기는 KBS 음악 프로그램 '이소라의 프로포즈'다. 왁스는 "데뷔 무대가 얼마나 떨렸으면 위경련이 와서 병원까지 다녀왔다. 그래도 라이브를 해 냈다. 당시의 긴장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기억했다.

이어 "그 이후로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비롯해 '윤도현의 러브레터',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후속 프로그램만 나가면 컨디션이 딱히 나쁘지 않아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징크스가 생겼다"고 했다.

그의 노래는 대중음악 주 소비층인 10∼20대 외에도 40대 이상 기성세대 사이에서도 사랑받았다. 사랑 혹은 연애 말고도 이별(화장을 고치고), 어머니(엄마의 일기), 성장·결혼·육아(황혼의 문턱) 등 삶을 아우르는 노랫말이 듣는 이들의 마음에 가닿았다.

왁스는 "한창 활동하던 당시엔 차에서 내려 노래하는 일상이 반복돼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제 노래가 그렇게 세대를 아울러 인기 있다는 것도 몰랐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황혼의 문턱' 같은 노래는 한 편의 인생 드라마 같은 면이 있다. 옛날에는 이해가 잘 안됐지만 다시 보니 가사가 참 좋다"고 말했다.

왁스는 최근 히트곡 '화장을 고치고'를 셀프 리메이크해 발표했다. 앞으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은 자신의 노래 네 곡을 더 내놓을 예정이다.

그는 "젊고 팔팔하던 '24년 전 나'와의 싸움 같던 작업이었다"며 "원곡에 가깝게 옛날의 나를 불러내야 할지, 지금의 나대로 자연스럽게 불러야 할지 고민이 컸다. 밴드에서 나와 막 솔로로 데뷔한 야생마 같던 저를 길들이는 과정과도 같았다"고 설명했다.

"25주년이 그렇게 대단한 이벤트는 아니에요. 하지만 굳이 의미를 두자면, 셀프 리메이크 프로젝트 등을 통해 지나간 시간을 한 번쯤 중간 점검하는 계기로 삼고 싶습니다. 매일 보는 친구들과도 특별한 생일날에는 평소보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는 것처럼요."

tsl@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26일 08시1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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