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옛날폰 더 좋아요"…20대 여성들 앓는다는 '이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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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현(28) 씨가 아이폰SE 구매 후 인증샷을 찍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번개장터에서 아이폰SE 구하는 게시글들이 올라와 있는 모습. 사진=독자제공·번개장터 갈무리

지영현(28) 씨가 아이폰SE 구매 후 인증샷을 찍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번개장터에서 아이폰SE 구하는 게시글들이 올라와 있는 모습. 사진=독자제공·번개장터 갈무리

"일본 여행 가서 아이폰SE를 샀어요. 구하기 힘든데 일본 중고폰숍에는 있더라고요." 20대 ㅇ여성 A씨는 지난해 일본에서 산 중고 아이폰SE에 대해 "새로운 카메라"라면서 이 같이 말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 B씨도 소셜미디어(SNS) 엑스(옛 트위터)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고 일본 여행을 간 김에 아이폰SE 공기계를 2대 구매했다. B씨는 "아이폰SE가 단종돼 한국에서는 중고로도 구하기 어렵다. 구형 아이폰을 살 일 있다면 또 일본에 올 것 같다"고 했다.

20대 직장인 여성 C씨 또한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아이폰SE를 구매했다. 그는 "원래 아이폰을 계속 써왔는데 예전 카메라 색감이 그리워 하나 구했다"며 "사진 옮기는 것도 아이폰 에어드롭 기능으로 하면 되니까 번거롭지 않아 놀러갈 때는 휴대폰 2개를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아이폰SE2를 서브용이 아닌 메인 휴대폰으로 쓴다는 직장인 여성 D씨도 "아이폰SE 시리즈는 홈버튼도 있고 가볍다. 특히 카메라가 좋다"고 했다. 그는 "갤럭시는 화질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감성적 느낌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아이폰SE 모델을 구매한 이들 20대 여성은 공통적으로 '아이폰 감성'이라 통하는 카메라 색감을 구매 이유로 꼽았다.아이폰SE 모델은 카메라 색감이 어둡고 따뜻해 일명 '감성 카메라'로 불린다. SNS에 올리기 좋은 '감성 샷'을 찍을 수 있는 특징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이폰SE 기종을 갖고 싶어 시름시름 앓는다는 뜻의 '아이폰SE병'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유튜브나 네이버, X 등에는 '아이폰SE병' '아이폰SE병 완치 후기' 게시글이 상당수 보인다.

유튜브와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아이폰SE병' 관련 게시물들 사진=유튜브·네이버 갈무리

유튜브와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아이폰SE병' 관련 게시물들 사진=유튜브·네이버 갈무리

구형 아이폰은 국내 거래 플랫폼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당근마켓·번개장터에선 아이폰SE, 아이폰6S 등이 10만원대 초중반에 판매된다.

번개장터에 따르면 지난해 아이폰 6S의 등록 건수는 전년보다 500% 이상 증가했다. 이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에서도 구형 아이폰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이날 오후 기준 에이블리 실시간 디지털·휴대폰 분야를 보면 랭킹 1, 3, 7, 10위를 구형 아이폰이 차지했다.

중고 휴대폰 매장에서도 매물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전날 서울 신촌에 있는 한 중고 휴대폰 매장에선 아이폰SE 시리즈 진열대가 비어 있었다. 아이폰SE와 SE2는 한 대도 없었고, 아이폰SE3가 딱 한 대 남은 상태였다.

매장 직원는 "매장을 1월에 오픈했는데 아이폰SE는 그 달 마지막 주에 다 나갔다"며 "아이폰SE2는 이틀 전에 다 나가 매물을 구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폰SE 시리즈가 지난 5일 신촌 중고폰 매장에 진열되어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아이폰SE 시리즈가 지난 5일 신촌 중고폰 매장에 진열되어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구형 아이폰 특유의 카메라 색감이 20대 여성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C씨는 "최근 출시되는 아이폰 카메라는 옛날 아이폰 카메라 색감이 나오지 않는다"며 "단종된 아이폰만의 감성은 어떤 것에서도 대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매자 사이에서는 기능도 만족스럽다는 평이 이어진다. C씨는 "휴대폰이라서 필름 카메라처럼 이용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어렵지도 않다"며 "구형 휴대폰이라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는 점만 빼면 카메라로서 만족스럽다"고 설명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경제학과 교수는 "옛 것에 대한 향수가 소비자 심리를 자극했더라도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수요가 이어지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구형 아이폰을 구하는 데는 레트로 감성뿐 아니라 기능 측면에서도 소비자들이 만족해 인기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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