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자신의 음악적 고향이자 뿌리인 그룹 갓세븐(GOT7)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어진 대화에서 마주한 그는, 아이돌 그룹의 리더라는 익숙한 외피를 벗어던지고 단단하게 지탱하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자신만의 대지를 개간하고 있었다. 2014년 데뷔 이후 쉼 없이 달려온 제이비(JAY B)가 무려 3년 8개월이라는 긴 호흡의 공백을 깨고, 한층 더 깊어진 사운드와 단단해진 내면을 담은 새 미니앨범으로 마침내 대중 앞에 섰다.
10일 세 번째 미니앨범 'TR:EE(트리)'의 정식 발매를 앞두고, 서울 성수동 성수율 뮤직에서 제이비의 청음회가 열렸다. "오랜만의 미니 앨범 사이즈로 인사를 드리게 돼서 영광"이라며 운을 뗀 제이비는 "지금 설레고 적응할 때도 됐는데 긴장도 많이 되는 상황"이라며 오랜만의 컴백을 앞둔 설렘과 떨림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의 신보는 단순히 트랙을 나열한 결과물이 아닌, 지난 공백기 동안 통과해 온 불안과 성장의 기록이다.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증명의 부담을 내려놓은 제이비는, 갓세븐이라는 거대한 뿌리 위에서 피워낸 가장 '제이비다운' 변주곡을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사진=528헤르츠
"흔들릴수록 깊게 뿌리 내린다"…불안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새 소속사 528Hz(주식회사 528 헤르츠)와 손잡고 발표하는 첫 번째 앨범 'TR:EE'는 유영만 교수의 저서 속 '나무는 흔들리며 자라고 그 흔들림 속에서 더 깊은 뿌리를 내린다'라는 문구에서 출발했다.
제이비는 "글귀를 찾아보다가 나무가 자라는 원동력은 흔들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 글귀를 보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고, 이게 힘든 게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거구나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제 심정이 불안하고 힘들었던 것 같다. 항상 불안함이란 키워드는 제 감정 안에 있는데 그날 유독 그랬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실제로 그는 길을 가다 우연히 작은 나무를 구매해 집에서 기르며 이번 앨범의 영감을 구체화했다. 제이비는 "열심히 길렀는데도 죽기도 하더라. 어떻게든 살리는 방법을 찾아서 해봤는데 새 잎이 자랐을 때 너무 행복했다"며 "이번 신보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달라져 가는 흐름 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연결,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첫 솔로 정규앨범에 이어 이번 미니 3집 역시 프로듀서명 Def.(데프)로 전곡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제이비는 "트랙의 순서도 많이 신경 쓰고 사운드적인 질감과 이야기의 흐름이 하나의 소설책 같이 보이고 들릴 수 있게 신경 써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앨범은 레트로 알앤비, 몽환적인 신스 사운드, 로파이 알앤비 등 다양한 장르로 채워졌다. 앨범의 구조 역시 영리하게 배치했다. 6번 트랙인 '위(WE)'에 대해 그는 "이번 앨범의 뿌리가 되는 곡이자 관계와 성장의 중심이 되는 곡"이라며 "뿌리는 땅 밑에 있기 때문에 맨 뒤에 배치를 했고, 반대로 1번 트랙은 열매를 맺는다는 생각을 하며 트랙을 짰다"고 귀띔했다.
장르적 뚝심도 돋보인다. 제이비는 "개인적으로 알앤비 음악을 좋아한다. 그룹으로서는 팝적인 사운드를 더 많이 내고 트렌드를 따라갔다면, 제가 원래 추구하는 근본과 뿌리는 빈티지한 사운드, 소울 펑크"라고 밝혔다.
이어 "포기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알앤비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틀에서 벗어나지 말아야겠다는 약간의 두터운 벽이 있다"고 고백한 그는 "자꾸 제 귀에는 제 음악이 익숙해서 포기가 잘 안되지만, 이번 앨범을 기점으로 많이 내려놨다"고 부연했다. 다음 앨범에는 전곡 참여를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곡을 만드는 것보다 앨범 전체를 디렉팅하는 방향도 고민 중이라는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타이틀곡 'Layback(레이백)'에 대해서는 "따뜻하고 섹시한 느낌이 들면서도 노래가 나아갈수록 거친 느낌이 나고, 아웃트로 부분에는 공허한 느낌도 첨가하려고 노력했다"며 "보컬적으로 제 톤을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하게 쓰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지 신경 썼다"고 관전 포인트를 짚었다.
직접 수록곡들을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드라이브할 때나 대교를 건널 때 듣기 좋은 무게감 있는 감성의 '홀드 온 투 마이 백(Hold On To My Bag)', 다른 톤을 들려주기 위해 밤새 작업실에서 소리 질감을 만들어 낸 '오버플로우(Overflow)'를 차례로 언급했다. 특히 '오버플로우'에 대해 "후렴 파트 들어갈 때 의도치 않게 목소리가 약간 갈렸는데 느낌이 너무 좋아서 제 귀에 계속 남더라"며 작업 비화를 밝혔다.
이어 누군가나 특정 상황이 그리울 때 불 꺼놓은 방안에서 듣기 좋은 위로의 곡 '원 콜 어웨이(One Call Away)', 존경하는 아티스트인 누자베스에게 영감을 받아 90년대 알앤비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타임(Time)' 등을 설명하며 "믹스할 때 보컬 텍스처가 몽환적이고 빈티지했으면 좋겠어서 사운드 질감에 숨겨놓은 부분들이 많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캐치되는 앨범이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사진=528헤르츠
"증명이라는 부담 내려놓으니 찾아온 소소한 행복"
과거와 가장 달라진 점으로는 '태도의 변화'를 꼽았다. 제이비는 "이번에는 항상 보여주고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았다"며 "새 소속사에서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 덕분에 제 자신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마냥 제 욕심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리스너가 어떤 걸 듣고 싶은지 조율하며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기대를 많이 하다 보면 실망으로 다가올 때가 많고 제 자신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진다"며 "음악하고 춤을 추고 했던 시작은 즐거워서였다. 태도가 바뀌니 여유로워지고 표면적으로 말의 속도도 차분해진 것 같다. 가수라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며 산다"고 덧붙였다. 성장한 지점에 대해서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한번 더 확인하게 된다"며 "예전엔 최고를 생각했다면 요즘엔 최고보다 주어진 상황에 있어 내가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개인적인 목표 역시 지극히 소박하고 단단해졌다. 제이비는 "내일 밥 잘 먹을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루하루 밥 잘 챙겨 먹고 살 수 있어도 좋은 거 아닐까 생각한다. 따숩지 않아도 되고 도시락을 먹어도 된다"라며 "어제도 촬영했는데 김밥이 너무 예쁘게 잘 말려서 기분이 너무 좋더라. 이런 소소한 행복들이 많이 느껴지면서 미래에 거창한 걸 이루고 싶기보다는 하루하루 잘 살면 다행스러운 삶이라 느낀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사진=528헤르츠
그럼에도 아티스트로서의 최종 목적지만큼은 확고했다. 제이비는 "죽더라도 제 음악을 찾아 들었으면 좋겠다. 나쁜 이야기가 아니라, 오래오래 잘 살다가 호상할 건데 사후에도 많이 들었으면 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내가 앨범을 만든 것은 그때의 제 영혼이 들어간 것이라 생각한다. 책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오래 잘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제이비의 세 번째 미니앨범 'TR:EE'는 이날 오후 6시 각종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통해 정식 발매된다. 컴백 기세를 몰아 그는 오는 20일부터 21일까지 양일간 서울 YES24 LIVE HALL에서 단독 콘서트 'tape:roots Seoul'을 개최하며 팬들과 만난다. 이는 2025년 11월 개최한 솔로 공연 이후 7개월 만이다. 이어 오는 7월 11일과 12일에는 'tape:roots Bangkok'을 통해 태국 현지 팬들을 만나며 글로벌 단독 공연의 열기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