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아주면 빚 갚겠다는 조건부 ‘송구’
빚. 처음에는 그저 출마자들에게 자주 듣던 정치적 레토릭이려니 했다. ‘정치인이라면 외곽에서 잽 날리지 말고 링에 올라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고 곳곳에서 던지는 출사표를 보고 선(線)에 대해 떠올렸다. 김 후보와 송 전 대표는 각각 사면·복권과 무죄 확정으로 적어도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빚(사법 리스크나 정치적 논란)이 있는데 선거에서 뽑아주면 갚겠다는 이들까지 쏟아진다.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대선 자금 수수 의혹으로 1, 2심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그는 “대법원 판단 때문에 일상을 중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사례까지 주워섬겼다. 조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 등 혐의로 2심에서 유죄를 받고 22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다가 7개월 만에 의원직을 상실했다.대구시장에 출마한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도 있다. 그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돼 25일부터 재판을 받고 있다. 안위만 생각하면 의원 자리가 더 편한데 “시민과 당원들의 부름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코인 투기’ 논란을 ‘현지 누나’ 논란으로 덮은 민주당 김남국 대변인은 경기 안산갑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를 노리고 있다. “시민 뜻을 따르겠다”면서도 안산에서 새벽 5시 반에 국회로 출퇴근한다고 시민들을 압박한다.
형을 다 살았거나 사면·복권으로 피선거권을 회복한 이는 물론이고 논란에 휩싸인 이, 재판 과정에 있는 이 누구나 출마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준선을 뒤로 한 발 물리면 어떻게 될까. 그 배로 나서는 게 여의도다. 선거에서 당선되면, 즉 정치적으로 선택을 받으면 죗값을 치르기도 전에 ‘나쁜 검사·판사·정권’ 프레임을 만들기 쉽다. “무엇이 진실인지 국민이 심판했다”며 개인 비리로 죗값을 치르고서 정치보복의 희생양인 양 포장할 수 있다.
이를 알기에 김경수는 “도민들께 제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대단히 송구하다”고 말한다. 추경호는 “원내대표였다는 이유만으로 정치공작성 수사의 표적이 됐다”고 주장한다. 또 대출 사기 등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민주당 양문석 전 의원이 김용을 향해 “지역구(안산갑)를 맡아주면 시민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떠든다. 빚을 지지 말아야지, 왜 빚을 지고서 제 것도 아닌 지역구를 양도하려 하는지 황당할 따름이다.기준선 무너지면 정치가 방패가 된다이런 일들이 당연해지면 자신을 지키려고 출마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2024년 조국 출마가 2026년 김용 출마를 부르듯. 그렇기에 ‘빚’ 운운하는 여의도 언어를 너그럽게 받아줘선 안 된다. 선거는 정객들의 명예 회복 무대가 아니다. 각종 논란과 리스크 속에 선 인사들에게 방패를 쥐여주는 장은 더더욱 아니다. 평범한 국민은 보통 잘못하면 자숙한다.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정치가 이런 상식에서 멀어질수록 국민에게서 멀어진다.
홍수영 오피니언팀장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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