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수사 부실… 법정 와서야 드러나
검경이 비워둔 빈칸은 결국 판사가 채워야 했다. 성폭행 혐의를 조사해 달라는 피해자의 반복된 요청을 2심 재판부가 받아들였다. 재판장은 피해자의 청바지와 속옷 등 의복 일체를 전면 재감정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청바지 여러 곳에서 범인의 DNA가 검출됐다. 당초 경찰이 했던 감정은 범인이 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부위만 대상으로 이뤄져 나오지 않았던 증거였다. 용의자 특정에 집중하느라 성폭행을 밝히는 데는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피해자 청바지가 몸이 보일 정도로 내려가 있었다”는 최초 목격자 진술, “동생 속옷이 한쪽 다리에만 걸쳐 있었다”는 피해자 언니의 진술도 2심에 와서야 나왔다.
재판부는 성폭행 시도 사실을 인정해 범인에게 1심보다 8년 무거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다만 성폭행 여부에 대해선 사건 후 1년이 지나서야 재감정이 이뤄져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범인은 동료 재소자들에게 피해자 주소를 읊어대며 “출소하면 살해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하는데 초동수사 실패가 그의 출소를 앞당겨준 셈이 됐다.
물론 수사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한정된 시간과 인력을 어디에 집중할지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확증 편향, 종결 욕구 같은 인지적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선의를 갖고 최선을 다해도 수사는 실패할 수 있다. 사회적 공분이 큰 사건일수록 압박도 커 함정에 더 취약하다. 그래서 보완수사가 중요하다. 유동적, 잠정적일 수밖에 없는 1차 수사를 보완하지 못하면 추가 증거 수집 기회를 날리고 범인이 다른 사람일 가능성도 닫아버려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에게 인권 침해다.
지금의 검찰개혁 논의에선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줄지 여부가 쟁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보완수사를 가장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검사가 보완수사를 할 수 있는 현 제도에서도 돌려차기 사건처럼 스크리닝에 실패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검사에게 보완수사 요구만 할 수 있게 하면 수사 통제는 더 허술해질 가능성이 높다. 경찰이 보내온 수사 기록은 1차 수사팀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내용 위주로 편집된 정보일 수밖에 없다. 검찰이 이를 검증하고 다른 가설을 확인할 수단이 없다면 오류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돌려차기 사건만 보더라도 검찰이 보완수사권을 적절히 활용해 최초 목격자와 피해자 언니의 진술을 확보했다면 그런 부실 기소가 이뤄지진 않았을 것이다.보완수사 ‘누가’보다 ‘제대로’가 중요
국가가 사적 보복을 용인하지 않고 형벌권을 독점하는 건 책임지고 실체를 규명해 합당한 처벌을 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전제로 한 것이다. 부실 수사는 이 계약을 정면으로 위반한 위법 행위다. 검찰권 남용을 막는 개혁은 필요하지만 수사의 완결성은 어떤 이유로도 후퇴해선 안 되는 원칙이다. 보완수사가 부실해 판사가 법정에서 ‘수사’하고, 피해자에게 국가배상까지 하는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는 것도 놓쳐선 안 될 개혁 과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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