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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애플서 1년 할 일, 한국선 기약 없다”는 경고

2 weeks ago 2

세계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에서 전체 수출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반도체 업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 논쟁이 이렇게 오래 끌 일인지 의문이다. 맥킨지가 한국 경제에 대해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 신세라고 경고한 지 10년이 지났고, 이제는 뜨거운 물을 끼얹어서라도 서둘러 탈출시켜야 한다는 경고까지 나오는데도 위기 불감증은 바뀌지 않았다. 변화에 둔감해도 살아남는 ‘우물 안 정치’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기업을 끓어오르는 냄비 속에 가두고 있다.

6년 넘은 주 52시간제 예외 논쟁

반도체 업계가 주 52시간제를 해보지도 않고 반도체특별법에 예외 조항을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니다. 6년 8개월간을 해보고 내린 결론이니 답을 해야 한다. 이 예외 적용을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주 52시간제를 뺀 보조금 지원만이라도 넣어 반도체법을 통과시키자고 한다. 기업들은 복잡하고 힘든 건 피하고 보는 정치권의 ‘회피 기동’에 이미 6년 넘게 허비했다.

주 52시간제가 우리 사회에 도입된 건 저녁이 있는 삶에 공감하고 투입 노동시간보다 생산성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 특유의 경직된 노동시장과 획일적 주 52시간제의 조합이 만들어 낸 부작용이다.

2020년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재택근무가 증가하자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 특수가 생겼다. 한국 전자회사 미국법인 대표는 당시 “주문이 늘어도 주 52시간제 때문에 한국 생산량을 크게 늘리기 어렵다. 나중에 수요가 감소할 때를 생각하면 한국 생산라인 직원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다”며 발을 굴렀다.

노동계와 야당은 재해·재난, 인명·안전, 돌발 상황, 업무량 폭증, 연구개발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노동자의 개별 동의를 받아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활용하라고 주장한다. 근무시간 연장을 위해 노동부 장관 승인과 노동자 개별 동의를 매번 받으라는 건 세계 시장에서 촌각을 다투는 초격차 경쟁을 하고 있는 기업에 할 얘긴 아니다.

우리끼리 경쟁한다면 몰라도 노동시간 규제가 없는 다른 나라와 경쟁하는 상황이라면 역차별이 될 수 있다. 전 세계 기업과 금융시장을 상대로 일하는 금융회사와 기업 본사가 밀집한 세계 금융수도 뉴욕은 ‘잠들지 않는 도시’로 불린다. 주 52시간 제도가 도입됐을 때 글로벌 금융회사의 한국법인 대표는 “서울을 글로벌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면서 금융사 직원들이 주 52시간에 맞춰 ‘칼퇴근’하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은 은행원 연구원 등에 대해 근로시간 제한을 두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을 두고 있다. 일본도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 비슷한 제도가 있다.한국 기업, 강점인 ‘속도’를 잃어

한국 기업의 최대 강점은 속도였다. 이젠 업계에서 “애플에서 1년이면 개발할 일을 미국 경쟁사에선 2년을 하고 한국 기업에선 언제 끝날지 모른다”거나 “한국 반도체가 압도적이었을 때 인재들이 모여들었지만, 지금은 미국 중국 경쟁사에 사람을 뺏기고 남은 인력은 주 52시간에 묶여 있다”는 한탄이 나온다. 기업들이 원하는 주 52시간제 예외는 외면하는 민주당이 기업들이 반대하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은 제 일처럼 속도를 내고 있다. 일자리를 만들 장기 투자에 족쇄를 달고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을 요구하는 펀드자본주의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기업의 걱정까지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일인가.

한국 경제의 실속(失速) 위기를 주 52시간제로 모두 설명할 순 없지만, 적어도 자국 기업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은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들이 6년 넘게 해봤으니 주 52시간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고쳐 써보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고치면 된다. 그게 실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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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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