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민주당은 어쩌다 ‘더불어펀드당’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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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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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미국 포드자동차를 세운 헨리 포드는 혁신가였다. 몇몇 부자나 타던 고가 자동차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해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직원 임금을 올리고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해 두툼한 미국 중산층을 만들었다. 그런 포드도 처음엔 투자자들의 강한 반대에 시달렸다.

투자자들은 소량의 고가 자동차를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드가 그들에게 굴복했다면 지금의 포드차나 양질의 일자리, 막대한 투자 수익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의 문제는 이런 것이다.

상법 개정안은 펀드 자본의 ‘트로이 목마’

상법은 기업 이사들에게 주주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민주당도 그간 이를 근거로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논리로 대기업 경영진을 비판했는데 이번에는 ‘이사 충실 의무’를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들고 나와 멋대로 골대를 옮겼다. 1400만 주식 투자자의 표를 의식해 ‘회사 대 대주주’의 갈등 프레임을 ‘회사 대 소액주주’ ‘대주주 대 소액주주’로 정치적 편가르기를 한 것이다.

개정안에는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모호한 조항도 신설했다. 장기적 회사 이익과 단기적 총주주 이익이 충돌한다면 이사는 무엇을 보호해야 하나. 이해관계가 각각 다른 전체 주주 이익을 공평하게 대하라는 건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칙은 몰라도 ‘1주 1표’의 주식회사 원칙에 맞지 않는다.

이런 식이면 포드가 회사의 미래를 위해 보급형 자동차 ‘모델T’ 생산을 결정하거나 직원 임금을 올리려고 할 때 주주 이익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의원들은 소송 남발 우려에 대해 “합당한 경영 판단은 대법원 판례로 면책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법정에서 다투려면 상당한 시간과 돈이 든다. 경영자들이 법정을 들락거리는 사이 경영은 위축되고 기업은 혁신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는커녕 추가할 수 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는 경제 8단체와 벤처기업협회까지 모두 반대하지만 사모펀드 관계자, 금융투자 전문가 등이 주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등의 단체는 찬성한다. 법조계에서는 소액주주 보호라는 의도와 달리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플랫폼 등이 적은 지분으로 기업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트로이 목마’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지분을 매입해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하는 비용보다 주주 충실 의무 위반으로 소송을 거는 게 훨씬 저렴할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 사이에서 “민주당이 어쩌다 ‘더불어펀드당’이 됐느냐”는 말까지 나온다.최 대행, 거부권 행사해도 놀랍지 않아

사모펀드 MBK가 인수한 홈플러스의 실패나 1990년대 이후 주주가치론이 득세한 미국 제조업 생태계 붕괴는 시사점이 있다. 펀드자본이 기업 가치를 높일 수도 있지만 차입 매수, 자사주 소각과 배당을 통해 기업 자금을 빼가는 ‘약탈적 가치 착취’ 창구로 변질될 수 있어 감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강령까지 만든 민주당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에 도전하는 ‘헨리 포드’들의 손발을 묶고 눈앞의 수익을 좇는 펀드자본에 날개를 달아줄 이유는 없다.

한국 주력 사업은 반도체 자동차 전자 등 투자가 많이 필요한 업종이다. 증권 은행 보험 등 금융업종과 달리 주주 환원이 기업가치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한국 기업의 가치를 높이려면 논란이 큰 주주 충실 의무 도입보다 이사들이 회사를 위해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기본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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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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