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림원차세대리더포럼]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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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비즈 박시현 기자] 세계적 행복 심리학자인 서은국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29일 열아홉 번째 영림원차세대리더포럼에서 ‘행복은 좋은 경험의 빈도’를 주제로 강연했다.

행복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처음 시작, 행복 심리학을 창시한 에드 디너 일리노이 대학교 교수에게 직접 수학한 서은국 교수는 행복에 대해 개인적 가치나 경험이 아닌 과학적 연구에 기초해 얘기한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게 서 교수의 주장이다.

서 교수는 이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이 행복감을 가지려면 과도한 안정 지향적인 삶보다 공격적인 삶을 추구하고, 남의 인정이 아닌 내 고유의 즐거움을 찾고 늘려야 하며, 일상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

◆“행복의 본질은 좋은 경험의 빈도에 있다” = 왜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하며, 이 경험이 가지는 본질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이 중요한 행복을 속성을 이해하기 전에 행복의 비결이나 기술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 본질적 모습을 이해하면 행복은 매우 단순한 현상임을 알게되는데 현대인들은 그 단순성을 외면하며 살고 있다.

30여년간 누적된 행복 연구 결과들을 재구성해보면 산만한 발견들 속에서 일관된 패턴이 나타나는데 결론적으로 행복감은 여러 개인적인 삶에서 좋은 것들을 만드는 밑거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표적인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한 철학자가 가졌던 개인적인 견해일 뿐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외히려 행복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 철학자들은 옛날부터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달리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며 미화했다. 하지만 인간도 동물일 뿐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이 우주 뿐 아니라 지구에서조차 특별힌 존재가 아니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존재하게 된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한다는 점을 일깨워졌다. 이 새로운 관점은 심리학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고 있다.

행복은 물리적 실체가 없는 추상적 개념이다. 그 정의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행복은 본질적으로 좋은 경험이라는 것이다. 좋은 경험이 없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하는 일이 매우 보람 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재미나 즐거움은 없으면 행복이 아니다.

이 좋은 경험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세상의 많은 책이 행복해지기 위해 ‘의미를 찾아라’, ‘가진 것에 만족해라‘,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같은 조언을 한다. 즉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행복 지침서를 읽고 행복해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지기 어려울까?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다. 좋든 싫든 감정적인 경험은 진화론적으로 우리의 생각과 의지의 명령을 따르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인간이 똘똘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물학적 기계이다. 이 생물학적 기계에 좋은 경험이 왜, 언제 발생하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잘 사는데 왜 행복감은 그만큼 높지 않을까? “행복의 본질은 좋은 경험의 빈도에 있다”라는 이 문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유교적인 사회, 수직적인 사회, 전통적인 것들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호평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평가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줄곧 받아왔다. 여기서부터 인생이 꼬였다. 전혀 재미없지만 남들이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을 찾았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당장 행복을 위해 살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행복과 성공·출세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뭐가 더 좋은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럼에도 성공과 출세가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은 완전히 착각이다. 출세도 좋지만 좀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좋은 경험, 즐거움 같은 것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인간의 모든 경험은 뇌에서 만들어내는 마법과 같은 놀라운 ’쇼‘ = 그렇다면 좋은 경험이라는 게 무엇인가? 인간의 모든 경험은 뇌에서 만들어내는 마법과 같은 놀라운 ’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뇌가 그 쇼를 왜, 언제 만드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사과의 빨간색은 사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과 표면에 반사된 빛의 파장이 우리의 시각세포를 흥분시키고 이 신경 반응을 뇌에서 합성해 ’빨갛다‘라는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약 빨간색이 사과 자체에 묻어 있다면 사과는 항상 빨갛게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색맹에게 사과는 빨갛게 보이지 않는다. 즉 사과의 빨간색은 사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본 사람의 머릿속에서 생겨나는 경험이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용돈을 받고 즐거워할 때 느끼는 행복 역시 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과의 빨간색처럼 행복감도 뇌에서 합성된 경험이다.

행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경험이 왜, 언제 뇌에서 발생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뇌의 주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구의 학자들은 약 600만 년 정도 인류가 존재했다라고 추정한다. 현재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문명 생활을 한다. 이를테면 인류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해 보면 인간이 문명 생활을 시작한 것은 12월 31일 밤 10시 8분부터이다. 그러면 364일 22시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 삶 속에서 관심사는 생존과 재생산이었다. 뇌는 이 생물학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소프트웨어다. 그런데 이 뇌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 뇌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필요한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서 얄미울 정도로 스트레스를 준다. 행복을 소리라고 한다면 이 소리를 만드는 악기는 인간의 뇌다. 이 악기가 언제, 왜 무슨 목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지 알아야 행복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행복은 감정이다. 인간의 감정은 쾌와 불쾌 두가지 밖에 없으며 뇌가 만든다. 이 쾌와 불쾌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켜졌다 꺼진다. 행복은 별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경험 중에서 쾌가 묻어 있는 경험의 합이다. 즉 이 쾌를 자주 경험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래서 행복은 좋은 경험의 빈도다.

그러면 쾌와 불쾌라는 감정은 왜 뇌가 만들까? 뇌는 절대로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 비싼 칼로리를 태워가면서 어떨 때는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어떨 때는 환희의 상태를 만든다. 식물에게는 그렇지 않은데 동물에게 이런 감정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은 동물에게는 항상 판단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판단은 앞으로 갈 것인지 뒤로 후퇴할 것인지 두가지 뿐이다. 불쾌는 도망가는 것이며 쾌는 생존에 필요한 것에 관심을 갖고 다가서게 만드는 것이다

이 판단을 몇 번 잘못해도 살아남지만 계속 잘못하면 반드시 죽는다. 감정은 생명체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대처하기 위한 시그널이다. 다시 말해 사자를 보면 도망가야 하는데 이 중간 감정이 공포다. 이 공포가 잘못 켜지면 다 죽는다. 그런데 도망가지 않고 쫓아가야 되는 일들이 생기면 쾌가 켜진다. 쾌와 즐거움은 내가 마음먹어서 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살면서 뇌가 쫓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에 한정돼 있다. 그래서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일상에 많이 심어놔야 한다. 뇌가 쫓아가려는 게 전혀 없는 상태에서 행복해지자 외친다고 해서 쾌가 켜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도구 = 우리는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는 생각에 익숙하지만 비과학적이며, 사실 행복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도구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이 도구의 작동법을 잘 이용해 전구가 켜질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것밖에 없다.

첫 번째, 행복은 ’불행하지 않은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걱정 없는 게 행복‘이라는 과도한 안정 지향적 삶은 행복감이 낮은 개인이나 국가 문화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그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 일본, 싱가포르이다. 잘 살지만 행복감은 그렇게 높지 않다. 축구에 비유하면 행복은 골을 넣을 때 느끼는 환희와 즐거움이다. 실점하지 않는 게 목적이라며 11명이 수비만 하면 축구가 재미있나? 축구는 골 넣는 것이 하이라이트인 것처럼 행복의 핵심은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걱정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환상이다.

행복하지 못한 사회나 사람들의 또다른 특성으로 ’회피 성향‘이 있다. 역시 안정 지향적인 삶이다. 그러면 어떤 새로움을 경험할 기회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생각을 서로에게 주입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막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이런 사회는 “하지 마라”, “조심해라”, “의심해라”라는 말이 많다. 우리 사회가 아무 걱정이 없는 완전무결한 상태를 만들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인 기대다. 완전무결한 사회는 있을 수도 없고 다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남미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은 우리나라에 비해 소득이나 사회적인 인프라가 떨어지지만 행복감은 훨씬 높다. 행복한 사회는 모든 것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13번째로 안전한 나라다. 우리도 붕괴 사고가 있지만 다른 나라는 훨씬 많다. 회피적인 성향은 결국 행복감을 끌어내리는 데 영향을 끼친다. “항구에 머물러 있는 배는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정박해 있는 배는 배가 아니다”라는 명언이 있다. 행복은 배를 타고 나가 친구랑 낚시도 하고 낚시하다가 비도 맞는 것이다. 뭔가 새롭게 해보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들이 중요하다.

두 번째, “남의 인정이 아닌 내 고유의 즐거움을 찾고 늘려야 한다”. 한국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면서 살도록 훈련받아 알게 모르게 뼛속까지 즐거움마저도 다른 사람들이 날 칭찬해 주느냐에 신경이 쏠려있다. “지켜봐 주세요” 같은 우리도 모르게 내뱉는 일상의 많은 표현들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사느냐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행복의 또 하나의 커다란 적이다.

내 고유의 즐거움은 스스로 찾고 개발해야 하는데 초경쟁적인 사회에서 살다 보면 쉽지 않다.

학교에서 졸업반 4학년 학생들과 상담하다보면 간혹 “제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마음이 먹먹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뭐를 좋아하는지 만져보고 경험해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해야한다. 우리가 행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많은 경험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압정을 밟으면 아프다. 그런데 만약에 아픈 게 아니라 재미있다고 하면 우리는 행복 부자가 되기 위해 밟았을 때 좋고 재미있는 느낌을 주는 압정들을 찾아내야 한다. 압정이 많은 자는 다니면서 밟을 빈도가 높을 것이며 압정이 없는 사람은 그 빈도가 낮을 것이다. 지금 행복 게임에서의 승부는 압정을 많이 갖는 것이다. 똑같은 사람만 만나지 말고 다른 사람과 만나 여행도 가보고, 음식도 맨날 먹는 것만 먹지 말고 별의별 것을 먹어보고 음악도 많이 들어보고 해야 뭐가 좋고 싫은지를 알게 된다.

100세 시대다. 맨날 골프 연습장이나 백화점에 갈 것인가? 사람마다 압정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절대적인 ’행복 압정‘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 행복에서 필요조건은 풍성한 사회적 경험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인간이 치르는 가장 성대한 의식들은 사람과의 만남 혹은 이별을 위한 것이다.

왜 이토록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할까? 그것은 바로 생존 때문이다. 인간이 수십만 년 동안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로 했던 자원은 바로 사람이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급작스럽게 먹이사슬의 최상단으로 올라가면서 지구를 정복하게 된 것은 혼자서가 아니라 협심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도구로 서로 썼기 때문이다. 집단에서 추출되면 사냥에 나가지 못해 고기를 얻어먹을 수도 없고 사자 먹이가 됐다. 더 중요한 문제는 혼자가 되면 정글에서 유전자를 남길 수 있는 짝을 만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가축의 피를 주식으로 하는 흡혈박쥐의 경우, 어미가 피를 구하지 못한 날은 새끼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이웃집 박쥐에게 피를 빌린다. 물론 빌린 피는 사정이 졸은 날 반드시 갚는다. 진화의 여정에서 집단에서 소외된 동물은 ’비샹식량 장치‘가 부족했고, 결국 이것은 죽음으로 연결됐다.

박쥐들 얘기 같지만 인간도 같은 운명이다. 몇 년 전에 미국 뉴욕타임스는 미국 성인의 사망 요인 1위는 ’고독‘이라고 보도했다. 병으로 따지면 암이 제일 위험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일수록 암에 많이 걸렸으며, 또 암에 걸렸을 때 혼자 살수록 회복률이 떨어졌다, 그리고 자살률도 높았다.

어느 논문에 따르면 혼자 사는 것의 위협은 65세가 넘으면 더 심각해진다. 흔히 건강을 위해서 하지 말라는 나쁜 습관으로 흡연, 음주, 운동 부족을 든다. 이 논문에서는 65세가 넘으면 건강에 해로운 이 세 가지를 실컷해도 혼자 사는 것만큼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2011년 미국 맨해튼에 살고 있는 제프 렉스데일이라는 39세 남자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외로움에 몸부림을 치다 급기야 노란 종이 한 장에 자기 전화번호와 간단한 문장 하나를 적어 맨해튼 곳곳에 붙였다. 그 문장은 ’뭐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저에게 전화하세요. 외로운 제프‘였다. 그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에게 실제 연락을 한 사람은 뉴욕은 물론 영국, 캐나다, 나이지리아, 말레이시아, 심지어 한국 등 40여개국의 7만명이었다. 자신도 외롭다는 하소연과 함께 힘내라는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인간의 뇌가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음식과 사람이다. 그런데 행복의 절대적인 요소가 되는 사람을 간과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 상황은 사람보다 돈을 중시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인생의 제일 중요한 목적이 부자라고 꼽은 나라 가운데 한국이 2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일상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 = 마지막으로 일상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나 국가의 특성은 행복을 거창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행복은 아주 구체적인 경험의 합이다. 비유하면 좋은 와인에는 좋은 포도가 필요하다. 포도알 하나가 뭐냐면 개인의 순간적 경험들이다.

우리가 행복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지역이 스칸디나비아다. 이 지역의 국가들은 복지 제도가 잘 돼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전 세계에서 의료 복지가 가장 잘 돼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이 행복한 것은 포도알 하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경험만큼 아름답고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런 철학이 바로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행복의 핵심이다.

노르웨이에는 하이커들의 성지인 ’토를의 혀‘가 있다. 해발 1,100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호수를 향해 수평으로 길게 튀어나온 아찔한 바위가 특징이다. 이곳에 가려면 8시간을 하이킹해서 올라가야 하며, 혀처럼 길게 나온 바위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2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사진을 찍는데 별의별 포즈를 다 잡는다. 심지어 자전거 앞바퀴 들고 찍는 젊은이도 있다. 당연히 사고가 나는데 매년 몇 명씩 떨어져 죽는다. 이 얘기에서 포인트는 이 위험한 곳에 단 하나의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요청에 노르웨이의 공식적인 답변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가지 마. 왜 남까지 못 가게 하나. 평생 볼까 말까한 이 아름다운 비경과 경험을 흉칙한 빨간 울타리로 막아서 훼손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것과 정반대 상황이 한국이다. 인천대교에서 서해를 바라보면 매우 아름답다. 이곳이 좋아 재작년에 송도로 이사까지 갔다. 그런데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일어 벌어졌다. 서해를 보면서 혼자서 좋아했던 그 장소에 오렌지 드럼통을 800개를 세워놨다. 자살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것도 모자라서 며칠 있다가 반대편에 또 800개를 세워놨다.

행복은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개발이나 발전 등의 구호를 외치는 사회는 행복하기 어렵다. 한국은 이제 60년대~70년대처럼 큰 공항을 만들고 멋진 빌딩을 지어서 행복해지는 촌스러운 시대는 지났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서로 존중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소한 사회적 경험이 특히 중요하다. 최근 논문들을 보면 행복한 사회는 울타리 안에서 얼마나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과 소소하게 스쳐가면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영어로 ’위크 타이(Weak Tie)‘다. 전철에서 만나는 사람, 옆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 등과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잠재적으로 나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내가 뭐 잘못하면 사진 찍어서 신고하는 사회는 끔찍하다.

2025년 갤럽이 내놓은 세계 행복 보고서에는 놀라운 통계 결과가 있다. 설문 항목에 일주일 동안 아침 빼고 점심, 저녁 두 끼 즉 14끼 중 다른 사람이랑 몇 끼 먹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답은 0부터 14까지인데 한 끼라도 더 먹은 사람들의 삶의 만족감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다. 사람과 만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일상에서 자주 있는 삶과 고갈돼서 없는 삶은 확연히 다르다. 우리 사회의 결핍이 나타나는 부분은 경제적인 부가 아니라 행복과 직결된 사회적인 부다. 삶에서 각자의 우선순위는 다르지만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좀더 부강해지는 어떤 일상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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