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고 언급한 말이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통산 3승을 자랑하는 김민규(24)는 지난해 우연히 SNS에서 봉 감독의 수상 소감을 본 뒤 다시 한번 유럽 무대 진출을 다짐했다고 한다.
김민규에게 가장 개인적인 것은 도전이었다. 지난해 KPGA투어에서 2승을 쌓은 뒤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 2위와 상금 2위에 오른 김민규는 올해 DP월드투어로 무대를 옮겨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향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싶다”며 “DP월드투어가 힘든 곳이라고 다들 말하지만 유럽을 통해 PGA투어에 진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한다고 하잖아요”
김민규의 유럽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만 14세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돼 주목받은 김민규는 또래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2017년 유럽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첫 도전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데뷔 첫해 DP월드투어 전신인 유러피언투어 3부에서 우승을 두 번이나 했고, 이듬해 2부 챌린지투어 D+D체코 대회에서 최연소(17세) 우승 기록을 세웠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에서 활동해야 했지만, 유럽 무대에 이름 석 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런데 김민규는 유럽이 마냥 좋은 기억으로 남은 건 아니라고 한다. “두 번 다시 유럽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유럽 투어에선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을 이동하며 대회에 나가야 하는데 매주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금전적 문제도 있었고, 혼자 모든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외로움도 컸어요.”
힘든 길임을 알면서도 김민규가 유럽에서 재도전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내놓은 답은 간단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전 아직 젊잖아요.” KPGA투어 대상 포인트 상위 랭커 자격으로 DP월드투어 출전권을 받은 김민규는 “8년 전에 비해 기술과 경험 등 모든 면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때는 다섯 발을 내디뎌야 했지만, 지금은 한 발만 내디디면 목표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독한 연습벌레, 최종 꿈은 PGA투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게 하는 힘은 ‘골프를 향한 진심’이다. 골프 외 다른 것엔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김민규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연습을 쉬지 않는다고 해서 ‘지독한 연습벌레’로 불린다. 김민규는 “연습을 하도 해서 될 것도 안된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면서 “안되는 걸 되게 하려면 공을 죽어라 치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김민규가 지독한 연습벌레가 된 것도 PGA투어 진출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는 “골프를 시작할 때부터 PGA투어 진출을 목표로 삼았다”며 “언젠가 PGA투어에서 활약하는 날을 꿈꾼다”고 강조했다.
김민규가 DP월드투어를 통해 PGA투어로 진출하려면 레이스 투 두바이 랭킹에서 상위 10명 안에 들어야 한다. 지난 10일 끝난 DP월드투어 커머셜뱅크 카타르 마스터스에서 시즌 첫 톱10(공동 8위)에 입상한 뒤 랭킹을 67위로 끌어올린 김민규는 “DP월드투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더 나아가 레이스 투 두바이 최종 톱10에 반드시 들겠다”고 말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