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바빠 단지형 아파트 고착화… 주거문화는 ‘집값’ 담론에 밀려나
日, 대단지 획일성에 의구심 갖고 다이칸야마 곳곳에 디자인 실험
형태로서의 집 vs 정서로서의 집… 집은 나와 가족 보듬는 장소여야
‘주택 물량’, ‘아파트 공급’…. 집값을 다루는 기사들이 쏟아질 때마다 ‘거주’, ‘일상’, ‘공동체’, ‘지역성’ 같은 단어는 좀처럼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한다.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이고, 신축이라 냉난방시설 등이 완비돼 있고, 초역세권에 무엇보다 자산 가치까지 확보한 단지는 현재로서는 적수를 찾아볼 수 없다. 20세기 초 근대 도시와 건축은 소수의 귀족과 권력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당시 대다수 시민은 인간다운 주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 갔다.》
한국 아파트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만든 ‘모던 리빙, 핵가족을 위한 주택의 표준양식’ 개념에서 출발한다. 일본은 1951년 전후 국가 복구 과정에서 미국식 주거 모델을 참고해 공공주택의 표준설계를 마련했다. 52.89㎡(16평)의 A형, 46.28㎡(14평)의 B형, 39.66㎡(12평)의 C형 등 세 가지 유형을 도입했다. 이 가운데 거실 없이 다이닝과 주방만 둔 C형은 일본주택공단에 의해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됐다. 이후 민간 분양아파트는 물론 농촌주택과 단독주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거 형태가 이 C형 구조를 본떠 건설됐다.
한국에서도 1962년 대한주택공사가 설립되면서 일본의 C형 주택 모델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의 출발점이 됐다. 이후 집합주택이 정치적 결정과 건설산업의 논리에 따라 확산됐고, 단지형 아파트로 고착화됐다.
일본은 1970년대 중반부터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 조성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집합주택의 디자인 혁명’ 시대가 열렸다. 이런 변화를 이끈 대표적인 사례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가 설계한 도쿄 다이칸야마의 ‘힐 사이드 테라스’다. 마키는 도시 건축은 시간성과 지역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유기적 집합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힐 사이드 테라스는 1969년 1기 사업으로 A동과 B동이 완공된 데 이어 1992년 6기 사업에서 F동과 G동이 들어섰다. 그는 언덕 경사지라는 지형적 특성을 각 건물에 반영했고, 시간이 누적되며 형성된 집합건축이 주변으로 영향을 미쳐 다이칸야마 지역 전체가 이러한 분위기를 공유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시간의 풍경’이라고 했다. 현재 다이칸야마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쓰타야 서점 역시 힐 사이드 테라스의 공간 개념을 계승해 조성된 사례다.이 지역의 대부분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아사쿠라 가문은 당시 일본 전역에서 유행한 고층 아파트 단지 개발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역사와 장소성을 지키기 위해 23년에 걸쳐 건축가와 함께 이 공간을 조성했다. 힐 사이드 테라스는 서구 근대건축과 일본 고유의 문화가 조화를 이룬 사례로 평가받는다. 군집된 건물들을 연결하는 길과 중정은 도시와 건축의 관계를 단단하게 엮는다. 힐 사이드 테라스는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집합주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아파트는 괜찮은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긍정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재건축 없이 평생 거주하며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아파트인가. ‘하우스(house)’가 형태로서의 집이라면 ‘홈(home)’은 정서로서의 집이다. 집은 부동산이기 이전에 나와 가족을 보듬는 장소다. ‘하우스’가 있어도 ‘홈’이 없는 상태라면 그것은 결국 또 다른 의미의 ‘홈리스(homeless·노숙)’다. 아파트는 재산이기 이전에 먼저 ‘홈’이 돼야 한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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