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인종 경계 허물어지는 한국 뮤지컬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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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인종 경계 허물어지는 한국 뮤지컬 산업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 등 해외 공연계에서는 백인 중심 캐스팅에서 벗어나 캐릭터의 인종과 관계없이 다양한 인종의 배우를 기용하는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이 이어지고 있다. 뮤지컬 ‘해밀턴’은 다양한 인종의 배우를 캐스팅하며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오페라의 유령’의 흑인 크리스틴(에밀리 쿠아추), ‘위키드’의 흑인 엘파바(렌시아 케베데)가 탄생하는 등 변화의 물결이 거세다.

한국 사회에서 인종 논의는 상대적으로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근 한국 뮤지컬 무대에서도 인종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과거 외국인 배우의 출연은 ‘난타’(2009년)의 일본인 배우 이와모토 유카, ‘빨래’(2012년)의 일본인 배우 노지마 나오토 등 일부 작품에 국한됐지만, 이제는 눈에 띄게 달라진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 뮤지컬 무대에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배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23년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는 일본·인도계 혼혈 배우인 루미나가 에포닌 역을 맡았고, 같은 해 뮤지컬 ‘일 테노레’는 미국 뉴욕 오디션을 통해 아드리아나 토메우, 브룩 프린스 등 외국인 배우를 캐스팅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는 한국 창작 뮤지컬 ‘차미’에서 주인공 차미호 역을 맡은 캠벨 해일리다. 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혼혈인 해일리는 2023년 뮤지컬 ‘곤 투모로우’ 앙상블로 데뷔한 후,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하며 한국 뮤지컬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차미’는 SNS 시대에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 그 자체를 사랑하기’라는 보편적 메시지를 다루고 있다. 취업 준비생 차미호가 휴대폰 액정에서 튀어나온 이상적인 모습의 ‘차미’를 만나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보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 사회의 고민은 한국인만이 겪는 것이 아니기에, 이 작품은 해외 관객에게도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성격을 띠고 있다.

해일리는 “외모만 살짝 다를 뿐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인”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그는 “한국 무대에서 외모나 인종에 따른 고정된 이미지가 존재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캐릭터를 표현하고 관객과 연결될 수 있는가”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차미’는 인종과 국적을 넘어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며 한국 뮤지컬의 인종 담론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국 뮤지컬계가 인종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2023년 국내 초연한 뮤지컬 ‘멤피스’다. 1950년대 미국 멤피스를 배경으로 백인과 흑인 간의 인종 차별을 다룬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 명확히 분리되는 두 인종 그룹을 통해 창작진과 관객 모두에게 인종에 대해 깊은 고민을 던져줬다.

물론, 아직 한국 무대에서 인종의 다양성은 해외에 비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인 배우가 해외 무대에 서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지만, 외국인 배우의 한국 무대 출연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동국대 중앙대 등 국내 여러 대학의 공연예술 관련 학과에 외국인 학생이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로 동국대 정기 공연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주인공 멜키어 역을 오스트리아 출신 유학생 루카스가 맡기도 했다.

이제 한국 뮤지컬계는 우리 안의 인종을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할지, 그리고 우리와 다른 인종과 함께 어떻게 무대를 만들어갈지에 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한국 사회가 점차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무대 위 인종의 다양성은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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