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에게는 그만의 도드라지는 '음악색'이 있다. 밝고 희망찬 에너지의 빠른 템포, 모방 불가한 음색을 내세운 차분한 감성 보컬까지 다양한 색깔이 한국 음악이라는 이름의 팔레트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 가운데 정준일은 유독 한 가지 소재에 몰두한다. 바로 이별.
헤어짐을 말하는 이별은 슬픔, 외로움, 아픔, 후회와 맞닿아 있는 감정이다. 절대 가볍지 않다.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노래해야 하는 이별의 감정은 상당히 무거운 쪽에 속한다.
최근 서울 광진구 티켓링크 1975 씨어터에서 진행한 콘서트에도 정준일은 '봄 여름 가을 이별'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매년 사계절을 만나고 떠나보내듯, 우리의 삶에서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순환되는 행위이자 감정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한 타이틀이었다.
무대에 선 그는 "왜 이 타이틀을 썼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지난해 함께 작업해 오던 작사가를 포함해 많은 주변인을 떠나보냈다며 "영원한 이별들을 겪으면서 느낀 게 있나 보다"라고 간접적으로 의미를 전했다.
공연은 시작부터 정준일의 묵직한 감성에 몰입할 수 있는 형태로 관객들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무대 위에는 정준일과 밴드, 그리고 음악의 파동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조명 그뿐이었다. 감정이 온전히 무대에 꽂힐 수 있도록 설계된 깔끔하면서도 압축된 연출이었다.
앉아서 노래를 시작한 정준일은 '난 너를 사랑해' '너에게 기대'를 불렀다. 차분하게 가사를 뱉어내던 그는 이내 곡에 담긴 후회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터트리며 오프닝부터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박수도 치기 어려울 정도의 극한의 몰입감이 장내를 감쌌다.
'말꼬리' '스물' '첫 눈'까지 소화한 뒤 정준일은 "이제 이별 노래 5곡을 연달아서 한다. 각오하셔야 한다"고 말해 잠시 분위기를 풀었다.
정준일의 경고대로 그의 목소리를 타고 더 깊고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 됐다. '일년을 겨울에 살아' '꿈' '러브 어게인' '얼음강' '안아줘' 등 사랑을 기저에 둔 그리움, 불안, 고통 등 누구나 느끼지만, 쉽게 털어놓기 어려웠던 내면의 감정들이 정준일의 보컬을 통해 터져 나왔다. 애절하게 노랫말을 토해내는 모습에 일부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다. 꾹꾹 눌러 담고 숨기기 바빴던 깊은 이별의 감정을 마주했기 때문일 테다.
정준일은 "여러분들 힘드셨을 텐데, 더 절망적인 6곡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경고가 아닌, 내면의 아픔과 더 정면으로 마주해 보라는 일종의 선언에 가까웠다. 넬의 '멀어지다'를 시작으로 '플라스틱' '좀 멈춰라 사랑아' '휘트니' '헬 오' '바램'으로 이어지는 세트리스트 안에서 정준일은 거칠고 격정적으로 변모한 밴드 사운드에 맞춰 힘 있게 노래하다가, 다시금 이별 감정에 집중해 단단한 보컬을 뽑아냈다.
'휘트니' '헬 오' 등은 지상파 방송에서 심의 부적격 판정을 받았던 곡들이었다. 정준일은 "염세적이라는 이유였다"면서 "다들 신나고 밝은 노래를 하니까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균형이 맞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특별히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이 없고 그냥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상대는 연인, 가족, 친구, 그리고 나 자신이 지닌 어떠한 목표나 꿈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별 역시 다양하다. 각기 다른 모양의 이별이지만, 이를 겪고 있는 이들이든 가슴에 품고 있는 이들이든 모두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정준일의 음악과 목소리였다. 철학은 없다고 했지만, 이별에 대한 탐구에는 상당한 시간을 쏟아부은 듯했다.
심연의 슬픔을 향해 뚜벅뚜벅 걷다 보면 역설적으로 희망, 소중한 존재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너에게' '고백' '푸른끝' 등 모든 곡의 끝이 이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공연이 끝나갈 즈음엔 오히려 따뜻한 마음이 남는다. 정준일 역시 "공연을 보고 가시는 길에 보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제 음악을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 인생의 순간순간, 장면 장면에 제 음악이 잘 숨어있길 바란다. 전 늘 하던 대로 저의 자리에서 끝까지 음악을 하겠다"고 말하며 눈물로 공연을 마쳤다.
한편 정준일이 공연한 티켓링크 1975 씨어터는 NHN링크가 서울 광진구 능동에 위치한 기존 어린이회관 문화관을 1010석 규모로 전면 리모델링한 공연장이다. 객석에 층간 구분을 하지 않아,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 없이 무대까지 뻥 뚫린 시원한 관람이 가능했다. 특히 정준일의 목소리와 밴드 라이브를 가감 없이 담아내는 풍부한 음향이 공연의 몰입감을 높였다.
로비 역시 관객 친화적인 인테리어로 시선을 끌었다. 앉아서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게 마련돼 있었으며, 고층부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천장 유리에 맞춰 초록색 정원처럼 꾸며 또 다른 사진 촬영 장소나 다름없었다. 로비 한편에는 정준일의 콘서트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아늑한 공간도 준비해 공연 전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관람 분위기를 예열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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