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함께 떠나요! 세계지리 여행]평양 냉면-쓰촨 마라… 생존 지혜 버무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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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다습한 동남아시아 지역선
매콤-새콤한 향신료 적극 활용
지중해 연안엔 올리브 잘 자라고
겨울 긴 북유럽선 저장식품 발달

평양냉면은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고기 국물을 섞어 맛을 낸 차가운 메밀국수이다. 여름철 많이 찾는 대표 음식인 평양냉면은 메밀 주 생산지인 평안남도 일대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평양냉면은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고기 국물을 섞어 맛을 낸 차가운 메밀국수이다. 여름철 많이 찾는 대표 음식인 평양냉면은 메밀 주 생산지인 평안남도 일대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여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음식이 있습니다. 시원한 육수에 담백한 면발을 자랑하는 냉면입니다. 사람들은 전국의 이름난 냉면집 앞에 길게 줄을 서며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름 별미로 즐겨 먹는 냉면이 사실은 겨울 별미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산간 지대인 북한의 평안도 지역에선 메밀이 잘 자랍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겨울밤 뜨끈한 온돌방에 앉아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동치미 국물에 메밀면을 말아 먹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평양냉면 원형입니다. 반면 부산을 중심으로 발달한 밀면은 6·25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북쪽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은 고향의 음식인 냉면을 그리워했습니다. 하지만 전쟁통에 메밀을 구하기 어렵자 메밀 대신 미군의 원조품이었던 밀가루를 이용해 냉면처럼 만들어 먹게 되면서 밀면이 탄생했습니다.

냉면과 밀면 한 그릇에도 한반도 지리적 특성과 현대사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입니다. 이번 글에선 특정 지역의 지리적, 환경적 조건이 어떻게 그곳 사람들의 음식 문화를 빚어 냈는지에 관한 다양한 세계 음식 이야기를 다뤄 보겠습니다.

● 자연에 순응하고 적응한 아시아

먼저 아시아의 음식 문화를 살펴보면 무덥고 습한 기후에 적응하려는 아시아인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대표적으로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은 연중 고온다습한 열대 기후에 속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음식이 쉽게 상하고, 더위로 인해 입맛을 잃기 십상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지역의 음식 대부분은 향신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태국의 새우 수프인 ‘똠얌꿍’에 들어가는 레몬그라스, 라임, 고추 등의 강한 향신료는 입맛을 돋우는 역할은 물론이고, 살균 효과로 음식의 부패를 막습니다. 또 땀을 배출시켜 체온을 낮추죠.

중국 쓰촨 지방 역시 분지 지형으로 인해 형성된 습한 기후가 음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로부터 이 지역 사람들은 몸속의 습기를 병의 원인으로 보고 이를 배출하기 위해 맵고 얼얼한 ‘마라(麻辣)’ 맛을 즐겼습니다. 매운 가재 요리인 ‘마라룽샤’나 매운 국물에 재료를 데쳐 먹는 ‘마라훠궈’처럼 땀을 쫙 빼게 만드는 음식들은 습한 기후에 맞서기 위한 일종의 음식 처방전이었던 셈입니다.

● 환경을 극복하고 활용한 유럽 유럽의 식탁 역시 그들이 처한 지리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연중 햇살이 풍부하고 건조한 지중해 연안의 이탈리아나 그리스는 올리브, 포도, 밀이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연히 이 지역 식단은 올리브유, 와인, 파스타를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특히 올리브유는 버터와 같은 동물성 지방을 구하기 어려웠던 지중해 지역의 핵심 지방 공급원이었습니다.

반면 춥고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북유럽과 독일 지역은 음식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저장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소금에 절이거나, 연기에 그을리는 방식으로 만든 소시지나 절인 청어는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의 산물이었습니다. 알프스 산악지대 스위스의 고유 음식인 ‘퐁뒤’ 또한 고립된 겨울을 나기 위해 저장해 둔 딱딱한 빵과 치즈를 녹여 먹던 것에서 유래한 지형적 특성이 낳은 지혜로운 음식입니다.

● 광활한 대륙의 축복, 아메리카의 식탁

아메리카 대륙 음식 문화는 고대 문명 유산과 광활한 자연이 준 독특한 식재료를 기반으로 형성됐습니다.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지역은 예로부터 옥수수를 신성시하던 마야, 아스테카 문명 중심지였습니다. 덥고 건조한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옥수수는 주식이었고, 옥수수가루를 반죽해 얇게 구운 ‘토르티야’는 오늘날까지도 멕시코 음식의 기본이 됩니다. 여기에 강렬한 햇볕을 받고 자란 토마토와 고추로 만든 ‘살사소스’를 곁들이는 것은 더운 날씨에 입맛을 돋우고 음식을 보존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고산지대는 세계인의 식탁을 바꾼 중요한 작물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바로 감자입니다. 서늘하고 척박한 고산지대에서 다른 작물은 자라기 어려웠지만, 감자는 이 혹독한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며 수천 년간 안데스 주민의 주식이 돼 주었습니다. 페루의 국민 요리이자 일종의 감자 케이크 같은 ‘카우사’나 볼리비아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자크로켓 ‘파파 레예나’가 감자를 주재료로 한 대표적인 요리입니다. 감자는 안데스의 지리적 환경이 이들 주민에게 준 선물인 셈입니다.

● 음식은 지리적 배경을 이해하는 창

세계의 다양한 음식은 각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살아 있는 교과서’와 같습니다. 한 그릇의 음식은 지도보다 더 생생하게 그 지역의 기후와 지형, 토양에 대해 말해 줍니다.

우리가 음식을 통해 지리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삶의 중요한 지혜를 배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의 답을 찾는 창의성’입니다. 인류는 척박한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는 대신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마치 여러분이 각자 다른 재능과 환경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조합하느냐에 따라 자신만의 멋진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이치와 같습니다. 새로운 음식을 마주했을 때 그저 맛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 속에 담긴 인류의 지혜와 창의성을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이런 맛을 만들어 냈을까?’ 하고 질문을 던져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탐구의 습관은 여러분을 세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킬 뿐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창의적인 인재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음식에 담긴 지리적 배경을 읽어내는 것은 결국 여러분의 삶이라는 멋진 요리를 만들어 나갈 최고의 레시피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안민호 마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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