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원자로-원자폭탄… 인류를 핵의 시대로 이끈 페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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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발전소 신설을 하지 않았던 일본이 최근 후쿠이현 미하마(美浜) 지역에 새로운 원전 건설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류가 여전히 원자력을 위험 물질로 다룰지 에너지원으로 활용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원자력 시대 문을 처음 연 인물이 바로 엔리코 페르미(1901∼1954·사진)입니다.

페르미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피사대 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20대 중반에 교수직에 올라 실험과 이론을 모두 아우르며 양자역학, 핵물리학, 통계역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1926년에 발표한 페르미-디랙 통계는 현대 초전도 물리학 초석이 됐습니다. 1933년에 제안한 베타붕괴 이론은 핵물리학 연구 방향을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1938년에는 중성자 충돌을 통한 우라늄 핵분열 연구와 초우라늄 원소 발견의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면서 과학사에 우뚝 섰습니다.

페르미의 삶은 과학적 성취만큼이나 격변의 역사와도 맞물려 있었습니다. 아내 라우라 페르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노벨상 수상 직후 무솔리니 정권의 인종 차별 정책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이후 그는 핵분열 반응을 제어하는 실험에 몰두해 1942년 세계 최초의 인공 원자로 ‘시카고 파일-1호’를 성공적으로 가동, 인류가 원자력 시대에 진입하는 결정적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 업적은 곧 ‘맨해튼 프로젝트’로 이어져 로버트 오펜하이머, 레오 실라르드 등과 함께 원자폭탄 개발의 핵심 인물이 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페르미는 교육자이자 연구자로 헌신했습니다. 그의 제자 중 5명이 노벨상을 받을 만큼, 그는 핵물리학의 급격한 성장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장기간 방사선에 노출돼 53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원자번호 100번 원소 페르뮴, 보손 입자와 대응되는 페르미온, 그리고 우주에서 다른 지적 생명체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묻는 ‘페르미 역설’ 등 과학 분야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7월 29일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창설된 날(1957년)입니다. 원자력의 가능성과 위험성 사이 균형을 다시 고민하는 지금, 페르미는 여전히 과학과 윤리의 경계에 서 있는 상징적인 이름입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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