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직업 등으로 얻는 사회적 이름… 나 자신과 일치시키며 정체성 확립
모든 이름엔 사회적 책임-역할 있어
노력 통해 갖고 싶은 이름 얻은 후, 걸맞는 삶 추구해야 진정한 성숙
현대사회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이 잦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는 경쟁과 변화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청소년도 성인도 끊임없이 고민하는 하나의 화두와 같습니다. 서점에 가면 내가 누구인지, 한국인이 누구인지, 사람이 무엇인지와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이 제법 많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이 쓰이고 읽힌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은 사회라는 증거일 것입니다.
● 정체성의 정의와 양상
정체성이란 자기가 존재의 동일성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어떤 특성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자신의 특성을 말합니다. 자신이 놓여 있는 환경 속에서 어떤 사건을 겪느냐에 따라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겪는다 해도 그 사건에서 자신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 그 사건의 의미를 어떻게 수용했는지에 따라 자아 정체성은 달라집니다.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청소년기를 두고 ‘자아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시기’라고 했습니다. 청소년기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를 확립해 나가는 때라는 의미입니다. 에릭슨은 성인이 되면 자아 정체성이 성숙되기도 하고 재정립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성인은 확립된 정체성을 성숙시켜 나가거나 확립되었더라도 직장의 변화와 같은 환경의 변화가 생기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에릭슨의 말은 정체성이 형성된 뒤에도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고민하면서 삶의 궤적을 만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정체성과 이름의 관계
세상 속에서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이름을 얻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의 자녀로 태어나거나 어떤 직업을 갖게 된다면, 세상은 나를 무엇으로 호명합니다. 그것이 곧 내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물론 이름은 주어진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선택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이름에 자본재로서의 성격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교사라는 이름을 갖고 싶은 이유가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점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재로서의 성격만을 강조하면 자기 소외를 겪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간혹 이름을 얻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이, 세상에서 어떤 이름을 좋다고 하기에 마냥 그 이름을 좇는 경우도 보입니다. 이름에는 그 이름에 부합하는 책임과 역할이 있습니다. 이를 ‘정명 사상’이라고 합니다. 이름을 얻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은 이름에 부합하는 책임과 역할을 도외시한 채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이름의 무게가 버거워서 견디지 못하기도 합니다.
● 이름 앞에 붙은 꾸밈말
자기가 갖고 있는 이름 앞에서는 반드시 어떤 꾸며주는 말이 하나 더 붙게 마련입니다. 만약 학생 또는 부모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면 그 앞에는 ‘좋은’ ‘나쁜’ ‘성실한’과 같은 꾸밈말이 붙는 것이지요. 어떤 이름으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름 앞의 꾸밈말까지도 고민할 때 그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에릭슨이 말한 자아 정체성이 성숙된다는 말도 자신의 이름 앞에 어떤 꾸밈말을 붙일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꾸밈말들은 내가 세상 속에서 어떤 사건을 겪을 때의 태도와 어떤 사건을 만들어갈 것인가의 고민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이름 앞에 어떤 꾸밈말을 붙이며 살고 있을까요?
박권주 진주 대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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