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 남짓 지났지만, 그 세월의 무게는 5년을 훌쩍 넘어서는 듯하다. 불과 5개월 만에 1948년 이후 세계 경제질서의 근간이던 브레턴우즈 체제와 세계무역기구(WTO)를 붕괴시켰다. 전후 국제질서의 축이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체제마저 흔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가히 충격적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 행보가 무역전쟁을 통해 기존 국제무역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능가하는, 더욱 파괴적인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트럼프발 금융위기설’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우려의 배경으로는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보호무역 정책이 초래하는 불확실성으로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부자 감세 정책의 결과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7%를 넘어서는 등 미국 경제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그 결과 최근까지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지던 미국 재무부 채권마저 위험자산으로 간주될 정도로 미국 경제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둘째,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제도권 금융회사를 상대로 한 건전성 감독은 크게 강화됐지만, 엄격한 감독이 미치지 않는 이른바 ‘그림자 금융’ 부문의 영향력이 미국에서 급속히 확대됐다는 점이다. 즉, 기업 구조조정 전문기업(PEF)이 여신과 보험 서비스 영역까지 무제한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제도권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그림자 금융권’의 규모가 제1금융권을 능가할 정도로 커져 새로운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부동산 관련 파생금융상품과 구조화 금융자산의 거품을 확대 재생산한 현재 미국 그림자 금융권의 거품이 붕괴하면 그 파괴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가상화폐의 투기적 거래 규제마저 철폐된 결과 금융위기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의 위기로만 끝나지 않고 세계 경제 위기로 확산했다. 이는 닷컴 버블 붕괴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이번 ‘트럼프발 금융위기’가 더 우려스러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키워온 가상화폐와 그림자 금융권의 자산 거품 위험성뿐만 아니라, 위기 수습을 위한 메커니즘 자체가 사라졌다는 점 때문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에는 주요 20개국(G20) 등 국제 정책 공조를 통해 위기를 수습할 수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이런 공조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로버트 실러와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공통된 우려다.
대안은 없는 것일까. 궁극적인 해답은 결국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있다. 즉,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극대화한 트럼프발 무역전쟁을 억제하고,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후 국제 경제질서의 안정을 유지해온 근간인 브레턴우즈 체제를 복원하는 것이다. 무역전쟁 방지를 위한 WTO의 기능과 국제금융 안정을 위한 국제통화기금(IMF) 기능을 회복하려는 국제 협력의 정책 시그널만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이 초래하는 심리적 공황 상태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국제 협력의 정책 시그널을 만들어낼 중추적 중간 국가로서 한국 정부의 역할에 거는 국제적 기대도 더욱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