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책임법이 영국 의회를 통과한 건 1855년이다. 이전까지 주주는 무한책임을 졌다. 사업이 망하면 투자 원금뿐 아니라 개인 자산을 모두 털어 빚을 갚아야 했다. 이런 제도로는 산업혁명 시기 철도, 운하 등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사업에 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다. 유한책임제도 도입 후 주주는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안심하고 자본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자본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기업이 돈을 빌리는 방식도 정교해졌다. 망해도 주주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없게 된 채권자들은 위험도에 따라 이자율을 세분화했고, 필요하면 기업 자산을 담보로 잡았다. 이렇게 고정이익을 얻는 채권자(선순위)와 변동이익을 얻는 주주(후순위)라는 자본 구조의 위계가 형성됐다.
100여 년 후 미국에선 주주의 ‘잔여 청구권(residual claims)’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주주는 기업이 올린 매출 중 비용(임금, 이자, 세금)을 모두 지급하고 남은 돈(잔여)의 권리를 가진다. 수익이 나면 큰 보상을 받지만 손실이 나면 가장 먼저 손해를 떠안는다. 이에 비해 채권자와 임직원은 이자, 임금 등 ‘확정된 보상(fixed claims)’을 계약을 통해 약속받는다. 주주만큼 기업가치를 올리는 데 절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미국 로체스터대 동료 교수이던 마이클 젠슨과 윌리엄 메클링은 이 지점에서 주주와 대리인(경영자, 직원) 사이에 필연적으로 이해관계 상충이 생긴다고 봤다. 1976년 나온 기념비적 논문 ‘기업 이론: 경영자 행동, 대리인 비용 그리고 소유 구조’의 핵심 내용이다.
대리인(proxy)은 본래 주인(principal)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지만 현실에선 자신의 권력, 높은 연봉, 특권적 소비를 우선시한다는 ‘대리인 딜레마’는 논문이 나온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기업 곳곳에서 발견된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의 성과급 투쟁은 새로운 유형이다.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상한선을 폐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를 제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과도한 보상을 넘어 주인 몫(잔여 이익)까지 떼어달라는 요구라는 점에서 젠슨·메클링 교수가 새 논문을 집필할 연구 소재라고 할 만하다(안타깝게도 메클링 교수는 이제 고인이 됐다).
삼성전자는 2023년 반도체 경기 악화로 15조원의 적자를 냈다. 2024년엔 차세대 메모리 시장에서 뒤처졌다는 우려에 주가가 4만원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주주는 고스란히 투자 손실을 감내했지만, 근로자들은 약정된 임금을 모두 보장받았다. 당연한 결과다. 그렇게 계약돼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회사가 적자를 내도 손실 위험을 지지 않는다. 대신 잔여에 대한 권리가 없다. 채권자가 약정된 원리금을 보장받는 대신 잔여를 포기한 것과 같다. 영업이익의 일정액을 무조건 노동자 몫으로 떼어달라고 하는 건 이 같은 주식회사의 기본적 계약 구조를 깨자는 주장이다. 이는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영업이익이 아니라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았다. 세후 영업이익에서 투입된 자본(주식, 부채)의 비용(가중평균자본비용)을 제한 수치다. 투자자를 위해 얼마나 남겼는지를 측정한 후 주주 몫 일부를 나눠주는 개념이다. 이를 영업이익 기준으로 바꾸자는 것은 주인의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젠슨 교수는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하려면 연봉을 얼마나 주느냐보다 어떻게 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성과급 논의는 대리인과 주인의 이해관계 일치라는 원칙하에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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