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주 충실의무' 입법 사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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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주주 충실의무' 입법 사례 없다

작년 12월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재로 상법 개정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와 관련한 참석자들의 공통된 인식은 합병, 분할과 이중 상장, 포괄적 주식 교환·이전, 자기 주식 취득과 처분, 신주·전환사채 발행, 이익 배당, 신사업 진출, 계열사 지원, 임원 보수, 자산 매각 등 통상적인 이사회 결의에서 총주주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아야 하며 만약 일부 주주가 피해를 본다면 이사는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제정한 ‘표준이사회 규정’상 이사회 결의사항은 총 69건, 99개 조문에 이르는데 이들 결의사항을 검토할 때 이사들이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나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지 말아야 할 충실의무 원개념을 이처럼 폭넓게 확장해 법제화한 나라는 없다. 필자는 올해 1월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가 개최한 상법 개정 공청회에 ‘상법 개정 반대 진술인’으로 출석했다. 소위원회 위원장 박범계 의원이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에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상법 개정에 찬성하는 두 진술인은 ‘그렇다’고 진술했다.

그렇지 않다. 델라웨어주 일반회사법 제102조(정관에 기재해야 할 사항) (b)항 (7)호는 ‘이사나 임원이 회사나 주주들에 대한 충실의무(duty of loyalty)를 위반한 경우의 면책을 정관에 규정하더라도 이사나 임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거나 배제할 수는 없다’고 규정한다.

이와 비슷한 규정이 한국 상법에도 있다. 즉 제400조 제2항 단서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핵심 내용인 경업 금지 의무, 자기거래 금지 의무, 사업기회 유용 금지 의무를 위반한 경우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을 (정관 규정으로) 감면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미국 50개 주 회사법, 일본, 독일 어디에도 이사회의 모든 결의 관련, 총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른 입법례로 ‘G20/OECD 기업지배구조 원칙(Principles of Corporate Governance)’ 제2장 G조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G조는 ‘소수 주주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행동하는 지배주주의 또는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한 지배주주 (지위) 남용행위(abusive actions)로부터 보호돼야 하며, 효과적인 구제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 (지위) 남용적 자기거래는 금지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도 충실의무를 직접 규정하지 않고, 본조 코멘트(해설)에서 ‘이사회 구성원의 회사와 모든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권고한다. 이사회의 모든 결의가 아니라 ‘지배주주의 남용적 자기거래’를 제한하려고 한다.

이 원칙은 자본의 이동이 세계 각국으로 확대됨에 따라 글로벌 투자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이상적인 모범규준으로서 입법 참고용일 뿐이며, 실제로 이 원칙이 말하는 충실의무를 채택한 국가는 없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위 ‘G20/OECG 원칙’을 도입해 지배주주의 남용적 자기거래를 규제하고 있다. 즉 이사의 충실의무 규정인 상법 제398조에서 주요 주주와 그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등과 회사의 거래를 제한하고, 이사 3분의 2 동의로써만 이를 할 수 있게 했다. 이사가 회사나 전체 주주의 이익이 아니라 주요 주주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것도 이미 상법의 충실의무 규정에 위배된다. 상법 개정은 불필요하다. 잘못 손대면 기업가정신을 위축하는 심각한 부작용만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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