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열심아빠, 부자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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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열심아빠, 부자아빠

내가 기억하는 선친(先親)은 매사에 열심인 분이었다. 강의와 회진을 위해 아침 7시 전에 출근해서 늦은 밤까지 일하셨다. 6·25 전쟁이 남긴 빈곤 속에서 오직 근면과 검소로 자수성가하신 아버지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의 나는 일에만 몰두하시는 아빠보다 가끔 일찍 퇴근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전통시장 통닭을 신문지에 싸 오는 작은 사치 내지 (요샛말로) ‘스웩’을 보여주시던 아빠가 더 좋았다.

어느덧 나도 아빠가 되었다. 내 자녀도 ‘열심아빠’보다 ‘부자아빠’를 원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자식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도 시험을 망쳐 상심한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공부를 좀 덜해도 좋아하는 분야에서 인정받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기껍다. 결국 부모든 자녀든 진정한 행복과 성공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젠지(Gen-Z) 또는 MZ세대는 개인의 가치를 더욱 중시한다. 이를 단순히 개인주의로 폄하하는 시각이 있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결국 한 사회의 성공과 행복은 구성원 개개인의 성취와 만족의 총합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과 정치권의 현실은 어떠한가. 상당수 리더가 구성원의 성과보다 순응을 중시한다. 그를 사회에서 맺은 소중한 가족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각 구성원의 성공보다 리더 자신의 출세에 보탬이 되는 복종을 원하는 것이다. 이런 리더십으로는 진정한 일류 국가나 기업을 만들 수 없다.

국회와 정부의 규제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친기업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치권의 가부장적 후견주의(paternalism)와 부처 간 주도권 경쟁으로 인해 비정합적 중복 규제가 난무한다. 이런 보여주기식 입법이나 조직 개편으로는 규제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규제의 명분으로 삼은 일반투자자와 소비자의 권익도 지키지 못한다. 입법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 전반, 법집행 기관 및 사법시스템과의 조화 등을 충실히 검토하지 않으면 중대 불공정거래 행위를 엄단할 수도 없고, 서민들의 집단·분산적 피해를 구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 공조와 양해 없이 외국 정부와 거대 다국적 기업에 국내법의 이행을 강제할 수도 없다. 결국 과잉규제의 최대 피해자는 법을 잘 지키는 선량한 국민과 기업이다. 따라서 어떤 정책 및 규제를 특정 지도자의 업적으로 브랜딩해 성급히 추진하려는 것은 진정성과 실효성 측면에서 매우 위험하다.

1970년대 전설적인 아타리(Atari) 게임제국을 건설한 놀런 부슈널은 성공의 비결로 권위적인 조직문화 타파를 꼽았다. 고급 식당에서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인재를 영입한 것도 아니었다. 허름한 맥주집에서 “당신은 성인이니 성과만 낸다면 일할 때 뭘 입든, 언제 출퇴근하든 상관없다”는 간단한 원칙으로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런 성과 중심의 기업문화가 주변 회사들까지 전파되면서 자두밭에 불과하던 실리콘밸리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미국의 2기 도널드 트럼프 정부 역시 성과주의(meritocracy)를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리더십은 무엇일까. 근면이나 경제민주화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미래의 주역인 우리 청년들과 주요 선진국이 부자아빠와 부자나라를 원한다면 우리 지도자들도 부자기업, 부자한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번영을 중시하는 실용적 가치와 문화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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