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3조원을 투입한 민생소비쿠폰 정책이 시행 중이다. 소비 진작을 통한 민생 회복이 목적이지만, 단순한 경기 부양책만은 아니다. 대규모 재정 투입과 소득계층별 차등 지원이라는 점에서 복지정책의 사회적 실험(social experiment) 성격을 띠고 있어 향후 더 나은 정책을 위해서는 성과 평가가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민생소비쿠폰은 소득과 지역에 따라 선별 지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기본소득에 가까운 방식이다. 즉 전 국민의 84%인 약 4300만 명의 중간소득층에 전체 예산 13조원 중 82.5%(1인당 25만원씩 약 10조7000억원)를 배당하는 구조다. 나머지 예산(약 2조3000억원)은 10%의 상위소득층과 6% 정도의 취약계층(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에 차등 지급한다.
이런 형식은 선별과 보편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지원 방식의 장점을 취한 실용주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두 방식의 단점만 부각돼 무엇을 위한 정책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향후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려면 이번 정책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물론 국내외 기존 유사 정책과의 비교를 통한 냉정한 정책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엄밀한 평가를 통해 관련 정책의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진정한 실용주의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반복될 때 정책 신뢰성과 지속 가능성도 커진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시행한 기본소득류 정책의 사회적 실험 결과는 긍정과 부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긍정적인 측면은 취약계층에 대한 낙인 효과(stigma effect)를 줄여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행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측면은 높은 재정 부담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과 근로의욕과 고용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행히 이번 소비쿠폰 시행 전에 선별 지원의 낙인 문제가 발견 즉시 개선됐다. 즉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소비쿠폰의 카드 색상이나 디자인을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게 발급하고, 기초수급자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노출됐으나, 즉각 조치로 심각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결국 낙인 효과라는 부정적인 인식은 사려 깊은 행정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과도한 행정비용 문제 역시 적절한 소득 파악 체계가 구축되면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코로나19 시기 자영업자에게 피해 보상을 하면서 동일한 액수로 일괄 지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개별 손실이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현재 국세청의 임금소득자 및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 파악 체계와 기법은 지속적으로 보완되고 있으며, 개별 소득 대부분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따라서 전산 및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한 현시점에서는 선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행정비용 문제도 마음만 먹으면 해결할 수 있다.
한편, 서울시에서 ‘서울디딤돌소득’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실험을 하고 있다. 이는 취약계층일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방식이며, 개인이 아니라 가구 기준으로 지원하고 있어 기본소득과는 여러 측면에서 대조된다. 한국의 복지체계 정립에서 복지제도의 기본 단위를 개인이냐 가족으로 할 것이냐도 중요한 정책 결정 사항이다.
이처럼 민생소비쿠폰과 서울디딤돌소득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실험은 한국의 새로운 복지체계 구축을 위한 새로운 실험이자 도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관련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데이터 기반 평가 시스템과 그를 바탕으로 한 유연한 정책 조정 메커니즘이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