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선수들이 ‘존(zone)’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있다. 온 세상이 사라지고 오직 물과 자신만 남은 듯한 순간, 몸이 의식보다 앞서 움직이는 경지다. 헝가리 태생 미국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것을 ‘플로(flow)’ 즉 몰입이라고 불렀다. 그는 수십 년의 연구를 통해 인간이 가장 높은 창의성과 생산성을 발휘하는 순간은 이 몰입 상태임을 밝혔다. 그런데 오늘날 직장인에게 “언제 마지막으로 몰입해 봤냐”고 물으면 대부분 오래 생각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회의는 인공지능(AI)이 요약하고, 보고서도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초안을 잡아준다. 반나절 걸리던 일이 한 시간 만에 끝나는 시대다. 그런데 직장인들은 오히려 더 바빠졌다고 말한다. 기술은 시간을 아껴줬지만, 정작 그 시간은 더 잘게 쪼개진 알림과 회의, 보고의 연속으로 채워졌다. 줄어든 시간은 어디로 갔는가. 답은 단순하다. 대부분은 ‘몰입하지 못한 시간’으로 사라졌다.
갤럽이 매년 발표하는 직원 몰입도 조사에 따르면 2024년 세계 직장인 중 일에 몰입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1%에 불과했다. 코로나19 봉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직원 몰입도는 글로벌 하위권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기업들이 ‘바쁘게 일하는 조직’을 만들어 왔을지언정 ‘깊이 일하는 조직’을 만들어 왔는지 되묻게 하는 수치다.
몰입은 흔히 개인의 태도 문제로 오해된다. 하지만 연구와 현장은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몰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결과다. 글로리아 마크 미국 UC어바인 교수 연구에 따르면 직장인이 화면 앞에서 주의를 유지하는 시간은 평균 47초에 불과하다. 한 번 끊긴 주의가 완전히 회복되는 데는 평균 25분 이상 걸린다. 잦은 회의와 메시지가 일의 ‘속도’보다 ‘깊이’를 얼마나 얕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AI 시대의 생산성은 더 이상 ‘몇 명이 일하는가’가 아니라 ‘현존 인력이 얼마나 깊이 일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자동화가 반복 업무를 대체할수록 인간에게 남는 일은 판단과 연결, 창의적 문제 해결이다. 이 영역에서는 속도보다 집중이 성과를 가른다. 몰입은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조직의 전략이다.
그런데 많은 조직이 여전히 몰입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평가가 경쟁을 강화하면 구성원은 협력보다 방어에 에너지를 쓴다. 리더가 통제를 강화하면 구성원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 눈치를 본다. ‘업무처럼 보이는 일’이 늘어날수록 조직은 바쁘지만 성과는 얕아진다. 사람이 게으른 것이 아니라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먼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회의 없는 오전’ ‘즉각 응답을 강요하지 않는 집중 시간대’ 같은 작은 설계만으로도 조직의 몰입도는 달라진다. 다음으로 평가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 협업을 강조하며 경쟁 중심 평가를 유지하는 한, 몰입은 구호에 그친다. 무엇보다 리더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리더는 사람을 관리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몰입할 환경을 설계하는 존재여야 한다.
AI는 일을 빠르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일을 깊이 있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깊이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며, 그 깊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몰입이다. 인력 규모의 경제 시대는 끝났다. 같은 인원으로 얼마나 깊이 일할 수 있는가. 그 차이가 기업의 미래를 가를 것이다. 몰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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