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유럽은 ‘에너지 목숨’을 러시아에 내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전까지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추진하던 독일은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 의존도가 49.5%에 달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았다. 에너지 안보가 중요하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고,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유럽 전역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했다. 에너지 안보를 방기한 채 일방적인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일변도 정책을 시행한 귀결이었다. 그로부터 4년, 이번에는 남의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올해 2월 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로 호르무즈해협의 통항이 제한됐다. 세계 원유 생산량의 20%인 하루 2100만 배럴이 오가던 길이 막힌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의 수출 경로가 차단되며 순공급 기준으로 하루 1070만 배럴이 시장에서 증발했다. 배럴당 70달러이던 두바이유는 한 달도 안 돼 싱가포르 현물 기준 169.75달러까지 치솟았다. 우크라이나전쟁 당시 최고점인 127.86달러를 33%나 웃돈다.
액화천연가스(LNG) 현물 가격(JKM)도 MMBtu당 10.5달러에서 22.35달러로 2.1배 급등했다. 카타르 라스라판 시설 피격으로 수출 능력의 17%에 해당하는 LNG 트레인 2기가 손상되고 불가항력이 선언됐다. 세계 LNG 공급량의 약 20%인 월 740만t의 공급 차질이 현실화했다.
한국 경제가 받는 충격은 직접적이고 구조적이다. 국내 원유 수입의 약 70%가 호르무즈해협을 경유하는 중동산이다. 원유만이 아니다. 카타르 장기계약분에서만 월평균 50만t의 LNG 공급이 줄었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수입물가 상승, 제조업 원가 부담 가중, 실물경제 위축이라는 복합 위기를 피할 수 없다. 이는 무역수지 적자 확대와 원화 약세로 이어져 수입물가를 다시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이제 에너지 안보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의 4억 배럴 규모 전략비축유 방출, 차량 5부제 시행, 유류보조금 투입 등 긴급 수요 관리가 가동 중이지만 이는 모두 단기 미봉책일 뿐이다.
우선 원유, LNG, 광물자원에 이르기까지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 단일 공급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격이다. LNG는 그동안 카타르산을 미국산으로 조금씩 대체하며 그 위험을 줄여왔다. 우크라이나전쟁에 비해 충격이 덜한 이유다. 앞으로도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비중동 공급원으로 수입처 분산을 추진해야 한다.
두 번째로 해외 자원 개발을 재개해야 한다. 한국가스공사가 ‘LNG 캐나다’ 사업의 지분을 확대한 결과 언제든 들여올 수 있는 LNG를 상당량 확보했다. 모잠비크 등 해외 가스전 직접 투자도 에너지 안보에 일조할 것이다. 이런 건 일본을 배워야 한다. 세계를 누비는 일본 상사들은 에너지 자주율을 50%까지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다. 위기 때마다 자원 안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기저 전원으로서 원자력발전의 위상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지키고 가격 안정까지 달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원전이다. 다행히 이번 사태 전 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이 허용됐고 신규 원전 역시 정상 가동됨으로써 전력 가격 안정에 이바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되 LNG, 연료전지 등을 병행하는 등 실현 가능한 에너지믹스 전략도 뒷받침돼야 한다. 국가 에너지 안보 전략의 재설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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