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윤리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나눴다. 신념윤리는 결과를 떠나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는 태도, 책임윤리는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계산하고 책임을 떠안으려는 자세다.
베버는 두 윤리를 대립이 아닌 상호보완의 관계로 봤다. 책임 없는 원칙은 독선으로, 원칙 없는 책임은 기회주의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베버는 그래서 정치를 "열정과 균형감각으로 단단한 널빤지를 천천히 뚫는 작업"이라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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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서 김민석 총리와 유시민 전 의원이 악수하고 있다. 2026.1.27 [사진공동취재단]
▷ 유시민 전 의원이 막스 베버를 불러내 '뉴이재명' 세력을 겨냥하고 나섰다. 그는 민주당 지지층을 가치 중심의 A그룹, 이익 중심의 B그룹, A와 B가 섞인 C그룹으로 나눴다. 그에 따르면 A그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떠받쳐 온 핵심 지지층이고, B그룹은 이 대통령의 뜻을 살핀다고 하면서 위기 상황에선 가장 먼저 돌을 던질 집단이다.
민주당 지지층을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작 베버는 정치를 '가치는 옳고 이익은 나쁘다'라는 식으로 단순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정치가 본질적으로 신념을 추구하면서도 때로는 도덕적으로 불결한 수단까지 감수해야 하는 현실의 영역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까지 책임지는 태도를 진정한 정치인의 덕목으로 보았다.
▷ 김영삼(YS)·김대중(DJ) 시대 이후 진보 진영의 이합집산을 돌아보면, A그룹이 말하는 '가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YS와 DJ는 1987년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갈라섰고, DJ는 1997년 대선에서 집권을 위해 박정희·전두환의 후예들과 손을 잡았다. 2002년 대선에서는 DJ 세력이 노무현 후보 교체를 시도했고, 집권한 노무현은 DJ 세력과 결별해 독자 노선을 걸었다.
보수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진보 진영은 문재인의 친노계와 안철수의 호남계로 갈라졌다. 이후 친노계는 친문으로 이름을 바꿔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당내 소수였던 이재명을 선뜻 껴안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때는 좌장 이낙연을 비롯한 많은 친문이 당을 떠났다. 진보를 갈라놓은 것은 고결한 신념이라기보다 현실적인 이해관계였다.
▷ 정치는 가치와 이익이 뒤엉킨 가운데 작동한다. 신념을 앞세운다고 하는 이들도 따지고 보면 '가치'라는 명분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는 성인군자의 일이 아니다"라는 베버의 말 그대로 정치는 불완전한 인간이 수행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곧 이익이 될 수 있는 모순은 피할 수 없다.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의 진보 내부의 갈등 역시 지방선거 이후 당권을 겨냥한 계파 간 전초전의 성격이 짙다. 검찰개혁, 언론개혁 같은 가치 이슈로 포장돼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당권 주자인 정청래 대표와 김민석 총리 간 이해가 깔려 있다.
정파 간 이익 경쟁은 정치의 속성상 불가피하다. 그러나 집권 세력이라면 공허한 가치 논쟁 대신 민생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베버가 말한 성숙한 정치인의 ABC가 바로 이런 것이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4월02일 08시3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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