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프로스포츠가 시간 단축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빠르고 화끈한 장면을 기대하는 젊은 스포츠 팬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프로골프에서는 그러나 ‘슬로 플레이’가 오랜 고민거리 중 하나다. 슬로 플레이는 ‘선수가 부당한 지연 없이 플레이해야 한다’는 골프 규칙 6조7항에 따라 샷을 하는 데 40초를 넘길 때를 의미한다. 최근 미국 프로골프 업계에서는 슬로 플레이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 규정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는 지난 14일 벌금보다 벌타를 강조한 새 규정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샷을 할 때 주어진 시간(40초)을 1~5초 초과하면 벌금을, 6∼15초 초과하면 1벌타를, 16초를 넘기면 2벌타를 매긴다는 내용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도 슬로 플레이 근절을 위해 선수들의 거리 측정기 사용을 허용하고 40초 샷 클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와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모두 매년 강화된 경기 속도 규정을 내놓지만 거북이 골퍼를 향한 불만은 10년 넘게 반복해서 제기되고 있다. 골프 특성상 한 선수, 한 조의 경기가 지연되면 뒷 조 선수의 플레이도 느려지기 마련이다.
지난해 10월 4일 경기 여주 블루헤런GC(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2라운드에선 한 조가 18홀을 도는 데 7시간11분(전반 9홀 뒤 휴식 시간 포함)이 소요됐다.
한 골프업계 관계자는 “국내 투어 경기 진행 속도가 느린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팬과 선수 모두를 위해 보다 강력한 규정을 도입해 슬로 플레이 인식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KLPGA투어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경기 시간은 5시간14분이다. 강화된 벌금 규정 및 적극적인 배드 타임(샷 시간 초과 페널티) 부과로 전년보다 평균 경기 시간을 21분 앞당겼다고 하지만 여전히 ‘느림보’ 이미지를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KLPGA투어 규정에 따르면 1차 배드 타임 때 구두 경고를 받고, 2차 배드 타임부터 1벌타 및 벌금 등을 받는다. 4차 배드 타임 땐 실격이다.
그러나 현재 규정이 소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KLPGA투어는 지난 시즌 배드 타임 부과 횟수가 47차례라고 강조하지만 그중 45회가 1차 배드 타임에 그쳤다. 실질적 페널티를 받은 경우는 두 번밖에 없다는 뜻이다. 반면 LPGA투어에선 지난 시즌 슬로 플레이로 적발된 선수 31명 가운데 22명이 벌금을 내고 9명은 2벌타를 받았다.
지난 시즌 KPGA투어에선 배드 타임 부과는 3회에 그쳤다. 모두 구두 경고였고 벌금이나 벌타를 받은 선수는 없었다. KPGA투어 관계자는 “올해 경기 속도 관련 규정을 조금 더 세분화하고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 골프업계 관계자도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국내 투어도 규정 강화를 논의해야 할 때”라며 “슬로 플레이어에 대한 페널티 부과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