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촬영 날 제가 울 거라 상상도 못했는데 펑펑 울었어요. 8~9개월을 매주 만난 선배님들, 스태프 분들과 못 볼 생각에 그렇게 눈물이 날 줄 몰랐거든요."
지난해 12월부터 방영된 MBC 일일드라마 '첫 번째 남자'의 마지막 촬영을 마친 다음날 배우 김민설이 꺼낸 말이다.
서울예술대학교 연기과를 졸업한 뒤 2022년 KBS 2TV '미남당'으로 데뷔했지만, 공백기 동안 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솔로지옥' 시즌4(이하 '솔로지옥4')에 출연했던 그다. '첫 번째 남자'는 그런 김민설이 초록뱀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고 배우로 돌아온 첫 작품이자, 생애 처음으로 이름을 내건 주연작이었다.
'첫 번째 남자'는 복수를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된 여자와 욕망을 위해 그 삶을 빼앗은 여자의 치명적 대결을 담았다. 김민설은 강백호(윤선우 분)에 대한일방적 애정과 집착으로, 그가 사랑하는 오장미(함은정 분)를 몰락에 빠트리기 위해 분탕질을 일삼는 악역. 함은정, 오현경과 같은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주연으로 나란히 이름을 올린 김민설이지만, 밉게 봐야 할 상황에서도 사랑스러운 구석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했습니다"
데뷔 후 찾아온 공백기가 길었다. '미남당'과 '네가 빠진 세계' 이후 작품이 끊겼다. 가장 힘든 건 금전적인 현실이었다. 부모님께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시기에 스포츠 아나운서 일을 하고, '솔로지옥4'에도 나갔다.
"코로나 때 활동을 시작했는데, 다른 경험을 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해봤어요. 배우가 아니더라도 여러 시도를 했는데, 그 중 가장 하고 싶은 건 결국 배우였어요."
현재 소속사인 초록뱀엔터와의 인연도 특별했다. '솔로지옥4'을 마친 후에도 프로필을 직접 돌리고, 혼자 광고 촬영을 다녔다. 그러던 중 의상을 빌리고 반납하던 사무실에서도, 미용실에서도 해당 회사 관계자들과 계속 마주쳤다.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자 "연기를 하게 된다면 여기랑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도 그렇고 저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생각하고 열심히 했어요. 그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습니다."
오디션은 초반엔 눈에 띄어야 한다는 생각에 과하다 싶을 만큼 악하게 연기했다. 아이라인을 올리고, 머리를 똥머리로 묶고, 빨강과 검정 계열 의상을 갖춰 입었다. "악녀를 할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줬다고.
"감독님이 '악역이라 악플을 받을 수 있는데 괜찮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사실 일일드라마를 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외할머니 때문이었어요. 항상 TV를 틀어놓으시는데 건강이 안 좋으세요. '솔로지옥'은 넷플릭스라 보실 줄 모르시거든요. 할머니가 보는 TV에 나오고 싶었어요."
현장의 막내였던 김민설은 선배들의 애정과 관심,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이효정은 항상 대기실 문을 열어두고 기다렸다. 본인도 모르게 나오는 표정을 짚어주고, "믿고 해봐라"는 말로 다독였다. 오현경은 "액션이 끝나면 항상 자상하게 웃어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오현경 선배님은 분량이 많으신데도 현장에서 힘든 티를 안 내세요. 저를 세심하게 배려해주시고요. 제가 선배님 머리채를 잡는 장면이 있었는데, 태어나서 그런 걸 처음 해보는 거잖아요. 저는 긴장하고 있는데, 먼저 대기실에 오셔서 무릎보호대랑 팔목보호대를 챙겨주시더라고요. 정말 섬세하시죠? 제가 선배님을 미는 장면에서 넘어지셨는데, 너무 놀라서 '괜찮으세요' 했더니 다 연기였어요. 나중에 '홍주가 잘해줘서 연기할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 또 감동했습니다."
극중 모녀 관계로 호흡을 맞췄던 김선혜는 자주 밥을 사줬다. 화내는 장면이 많아 힘들 때마다 "우리 홍주 최고야, 잘될 거야"를 반복해줬다. 함은정은 등에 잠을 잘못 자 담이 걸렸을 때 대기실로 마사지 기구를 들고 와서 직접 풀어줬다. 촬영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없으면 복도까지 찾아와 "얼굴 보러 왔다"고 했다고. 이러한 선배들의 애정에 "다른 곳에 가기 싫다"던 김민설이었다.
홍주로 받는 미움, "잘하고 있구나"
일일드라마는 반응이 맵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홍주 언제 없어지냐"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홍주를 미워하는 댓글을 볼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몰입해서 봐주시는 거잖아요. 감사했습니다."
홍주라는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드라마처럼 긴 호흡이었다. 단순히 악녀를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회가 쌓일수록 캐릭터가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많은 일일드라마도 보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도 봤어요. 악녀들을 많이 참고했죠. 그런데 드라마가 긴 호흡이다 보니 캐릭터는 제가 하면서 만들어지더라고요. 이럴 때 기분이 좋아지고, 엄마를 만나면 자격지심이 나타나고. 그래서 '캐릭터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구나'를 깨달았어요. 대기실 거울 보면서 못되보이게 표정 연기도 많이 했어요. 어떨 땐 덜 무서워 보이고, 세 보이지 않고 그랬거든요. '이렇게 했을 때 무서워 보이는구나'를 연습했습니다."
반복되는 장면이 힘들기도 했다. 홍주는 자격지심이 많아 "난 왜 항상 이래"를 되풀이하는 인물이었는데, 같은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고 싶을 때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버거웠다.
"밥만 먹으면 얼굴이 붓는 거예요.(웃음) 모니터에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지압 슬리퍼 신고, 괄사 누르고. 그런 것들도 다 그 고민의 일부였어요."
배우가 항상 1순위였다
연기를 잠시 내려놓던 시기에도 배우는 마음속 1순위였다고 했다. 스포츠 아나운서 활동은 배우를 향해 가는 과정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시청자와 소통하는 경험이 연기를 더 수월하게 해줬다.
유튜브 채널 '민설수설'도 혼자 찍고 편집하며 운영해왔다. 방송인 배성재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채널 이름을 '민설주의보'에서 '민설수설'로 바꿨다는 일화도 전했다. 최근 연기에 집중하느라 운영을 못한다는 말에 "외주를 맡기는 게 어떻냐"고 말했지만, 김민설은 고개를 저었다. "촬영부터 편집까지 제가 다 해오던, 일기장 같고, 팬들과 소통하던 공간이라 혼자 다 해내고 싶다"는 것. 그러면서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라며 언젠가 다시 하겠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첫 주연, 좋은 작품으로 마무리됐고, 현장에서 태도도 많이 배웠어요. 연기라는 것에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첫 번째 남자'는 한 걸음은 더 다가가도록 도와준 작품이었습니다. 앞으로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더욱 키워준 만들어준 작품이에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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