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90〉정상성 편향(Normality Bias) '설마'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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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새벽 5시, 창문이 흔들렸다. '일단 지각하면 안 돼' 그게 첫 생각이었다.”

2022년 2월 24일 새벽, 러시아군이 키이우에 첫 미사일을 쏘아 올린 직후에도 시민들은 출근길을 택했다. 지하철은 대피소로 전환됐지만 통근 시간 승객은 평소보다 겨우 3~4% 줄었을 뿐이었다 한다. 침공 2주 전에도, 길거리에 늘어선 모래주머니와 시내 8곳 드라이브 스루 대피소는 '사진용 세트' 취급을 받았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현실에 침투해도, 사람들의 뇌는 그것을 '곧 지나갈 돌발 이벤트'로 압축 저장했다.

첫 경보가 실시간으로 묵인되는 장면. 행동과학은 이를 정상성 편향(Normality Bias)이라 부른다. 낯선 위험이 닥쳐도 인간은 뇌 속의 '평소 내러티브'를 먼저 보호하기 때문이다. 이 편향은 재난·전쟁뿐 아니라 기업 경영에서도 반복된다. 2023년 3월 9일, 실리콘밸리은행 예금의 25 %에 해당하는 미화 420억달러가 단 하루 만에 빠져나가 '폰(Phone) 뱅크런'으로 파산했다. 전날까지 창업자·벤처캐피털(VC)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정부가 포기할 리 없다'며 안도했다. 불과 24시간 지연이 만든 손실이었다.

이렇듯 정상성 편향은 네 단계를 밟는다. 처음엔 무시하고, 다음엔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합리화하고, 이어서 행동이 얼어붙는다. 마지막에는 과잉 반응이 터진다. 기업이 배워야 할 대목은 피해 규모가 '예측력'이 아니라 지연 시간에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MIT 슬론이 30개 기업 팀을 대상으로 한 2024년 위기 실험에서도 75 %가, '데이터를 더 보자'며 결정을 24시간 미뤘다. 손실 추정액은 평균 2.8배 뛰었다. 예측이 아니라 지연이 문제였다.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 관련 수치가 악화할수록 사람들의 정보 탐색량은 되레 줄고(뉴스 회피), 기존 서사 소비만 반복된다. 즉, '정상을 찾기 위한 정보'가 아니라 '정상이 맞다는 확인'을 위한 정보다. 결국 정상성 편향은 '데이터 부족'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해석권'을 독점하려는 내러티브 중독 현상이다. 키이우·SVB, 각기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난 공통점은 다음 셋이다.

첫째, 동일 집단 에코체임버로 같은 언어, 규범, 평판체계를 공유하는 집단에서는 외부의 경보를 초기엔 무시하다가 임계점을 넘으면 한꺼번에 과잉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정책·선거·규제 같은 거시 변수로 위험을 외주화 하며, 실제 지표 변화를 '일시적 소음'으로 축소한다. 사람들은 정책, 규제, 보험 등 거시 시스템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루틴적 믿음을 갖기 쉽고 실제 지표 변화를 잡음으로 취급한다. 키이우 시민들이 '전쟁까지야 벌어지겠어' 하며 일상 출근을 선택하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은 익숙한 체계에 기대어 위험을 외면한 사례다. 셋째, 현대의 모바일 뱅킹,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 등은 초기에는 '정상성 신화'를 빠르게 전파하지만, 일단 공포가 번지면 똑같은 속도로 패닉 서사를 증폭해 전파시킨다. SVB 뱅크런이 하루 만에 폭발한 것이나, 키이우 시민들이 하룻밤 사이 태도를 바꿔 탈출 행렬에 합류한 모습은 디지털 시대 정보 확산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요즘 국내 정치·경제에도 확인되지 않은 관세, 환율, 부동산 루머가 쏟아진다. 이에 대해 우리는 위험을 과장할 필요도, 모든 루머에 반응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익숙한 서사가 자신을 어떻게 속이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할 필요는 있다. 첫 번째 경보음은 늘 작고, 두 번째 경보음은 종종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설마'라는 말이 떠오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만일 이번이 예외적인 위기라면 우리 조직은 무엇을 각오해야 할까? 그 질문이 남겨 둔 여백이, 다가올 위기에서 골든타임을 벌어 줄 유일한 보험이다.

관련해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다음의 세 가지 현실 확인 방법을 제시해 본다. 우선, '우리 고객은 절대 떠나지 않는다'와 같은 해당 조직이 신봉하는 '절대 명제'를 적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명제마다 정반대를 시사하는 외부 데이터를 한 줄씩 찾아 옆에 적어본다. 그리고 반례가 하나라도 확인되면 하루 안에 되돌릴 수 있는 행동을 실행해본다.

우리는 자주 '과장일 거야' '곧 진정될 거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폭탄보다 합리화의 침묵이, 여진보다 무시의 시간 지연이 더 큰 피해를 낳는다. 위기가 다가오면 가장 먼저 깨지는 것은 과거 데이터의 합으로 만든 '정상'이라는 가설임을 기억해야 한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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