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한국 청년들은 왜 캄보디아에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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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캄보디아에서 한국 대학생이 현지 범죄조직의 고문 끝에 숨진 사건의 파장이 크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 새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상대 범죄가 급증하고 있었는데 정부 당국의 대응은 그만큼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실상을 잘 몰랐어도 외교 당국은 상황을 알고서도 제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크게 할 말이 없어 보인다. 13일 국회에 나온 조현 외교부장관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시기가 "지난주 정도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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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국기

[촬영 안철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캄보디아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지난 7월 출국한 경북 예천 출신의 대학생 박모(22)씨는 현지 범죄조직에 감금돼 범죄행위에 동원됐고 극심한 고문을 받다 지난 8월 초 병원으로 옮기던 중 차 안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이 사회적 관심을 끌면서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관련 신고가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속속 확인되고 있다. 캄보디아 내 우리 국민 납치 신고 건수는 2021년 4건에서 지난해 220건으로 급증했고, 올들어서만 8월까지 330건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외교부는 이달 10일에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이달 들어서도 캄보디아에서 실종됐다는 신고가 전국에서 이어졌다. 실종자 양모(34)씨의 가족은 이달 12일 "캄보디아로 출국한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양씨는 이달 9일 "빌린 돈을 갚기 위해 2, 3주 정도 캄보디아에 다녀오겠다"며 프놈펜행 비행기로 떠났다고 한다. 양씨 아버지는 아들과 연락이 끊긴 지난 11일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에 실종 사실을 알렸으나 "당사자가 위치한 곳을 알리고 (납치)신고하는 게 원칙"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렇게 신고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을 것이다.

이러한 외교당국의 대응은 실종자 가족들을 한 번 더 좌절시킨다. 캄보디아 경찰은 피해자의 '본인 직접 신고' 원칙을 고수하고, 심지어 출동을 위해 '감금된 사진·영상'까지 요구한다고 한다. 우리 외교당국은 캄보디아 경찰의 방침을 실종자 가족에게 그대로 안내하는 것이다. 현지 대사관에 파견경찰관이 3명에 불과하다 보니 실종 신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경찰은 실종 사건과 관련한 캄보디아 당국의 협조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설명도 내놓았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을 통해 20건의 공조 요청을 했지만, 실제 회신은 6건에 그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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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부터 캄보디아 주재 한국 대사가 공석이다 보니 양국 간 공조가 더 좋아질 여건도 아니다. 경찰은 캄보디아 범죄 대응책으로 코리안 데스크(한인 사건 처리 전담 경찰관) 설치 등을 뒤늦게 추진한다는데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13일 이 문제와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14일에는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대응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물론 외교 당국의 신속한 영사 조력과 현지 수사 역량 강화 등이 시급한 문제다. 한편으로는 캄보디아에서 벌어지는 한국 청년들의 비극은 근본적인 문제를 일깨운다. 그들이 이국만리 땅으로 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백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강해서 '고수익 일자리'라는 유혹을 참지 못했을 수 있다. 경쟁에서 밀려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정도로 처지가 궁박한 젊은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기성세대라면 누구도 이들 젊은이를 두고 범죄와 연루될 것이 뻔한 곳에 제 발로 간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하기 어렵다.

최근 '천재 피아니스트의 고백'이 인터넷 공간에서 화제라고 한다. 미국에 거주 중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두 달 전 해외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10대 학창 시절을 보낼 때 치열한 경쟁문화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았다면서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는 내용이다. 지금 한국의 20, 30대는 선진국으로 성장한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가혹한 경쟁과 심화한 불평등 속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는 압박에 시달릴 수 있다. 그중에서 누군가는 '캄보디아'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우선은 "살려달라"는 이들의 목소리에 국가가 응답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국내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민생을 살려 그들이 한국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bond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14일 14시57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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