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진 칼럼] '똘똘한 한 채'와 빈집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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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진 칼럼] '똘똘한 한 채'와 빈집의 나라

봉준호 감독의 2019년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와 고급 주택에 사는 가족을 대조하며 한국 사회의 양극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그보다 더한 집값 초양극화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주거 계층의 최상단에는 서울 강남, 특히 반포·압구정 등 한강 변 아파트가 있다. 서초구 반포동의 신축 단지 래미안원베일리는 지난 3월 전용면적 84㎡가 70억원에 실거래됐다. 3.3㎡당 가격이 2억원을 넘긴 것이다. 한강 조망이 가능한 최상층 펜트하우스(전용 235㎡)는 250억원에 매물이 나왔다. 재건축되면 반포를 제칠 것으로 전망되는 강남구 압구정 일대 아파트도 3.3㎡당 2억원을 돌파했다.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하위 계층은 지방이다. 전국 빈집 13만4000여 가구의 90%가 지방 빈집이다. 가격 하락으로 모자라 빈집까지 속출하자 정부가 대책을 내놨다. 준공 후 미분양도 지난해 말 2만1500여 가구로 2014년 이후 최대인데, 이 중 80%가 지방에 몰려 있다. 지방 건설사들의 줄도산이 현실화하고 있는 이유다.

서울 집값이 압도적으로 오르자 지역 사람들도 서울로 몰린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의 외지인 매입 비율은 21.5%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서울과 부산의 대표 재건축 단지인 압구정 신현대와 남천동 삼익비치 115㎡의 실거래가를 비교해보면 차이는 더 명확하다. 신현대는 2018년 23억8000만원에서 올 3월 60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올랐지만, 삼익비치는 같은 기간 6억4500만원에서 12억5000만원으로 두 배가량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런 격차는 모두가 ‘똘똘한 한 채’를 향해 달려간 결과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흐름은 집값을 잡으려고 한 과거 좌파 정부의 규제가 만들었다.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되자 여러 채 대신 한 채에 수요가 몰린 것. 다주택자가 되면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파는 순간 양도세 폭탄(최고 세율 75%)까지 맞아야 했다. 차라리 비싼 한 채를 사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었다. 현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유예하고 있지만, 1년 단위로 연장되는 불확실한 조치일 뿐이다. 정권이 교체되면 내년 5월 이후 다시 중과세가 부활할 수 있다.

공급도 감소하고 있다. 올 1분기 서울에서 분양된 아파트는 고작 한 단지(1097가구)뿐이다. 서울 아파트 입주는 올해 4만7000가구에서 내년 2만4000가구로 절반 가까이 감소한다. 수요가 몰리는 서울에서 공급을 늘릴 길은 재건축뿐인데, 초과이익환수제 등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이번 정부는 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추진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양극화를 완화하려면 지방부터 살려야 한다. 정부가 지방 준공 후 미분양을 사주는 식의 공급자 중심 대책으로는 부족하다. 지방에 한해 다주택자 중과세를 완전히 배제하는 등 수요를 살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부자 감세’ 프레임으로 재건축을 막아온 결과가 지금의 공급 절벽이다. 서울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폐지하고, 사업기간 단축을 위한 특례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에서 반지하집 주인공 아들은 호화 주택을 매입하는 꿈을 꾼다. 봉 감독은 그가 월급을 모아서 그 집을 사려면 547년이 걸린다고 했다. 지금 원베일리 펜트하우스를 사려면 우리나라 평균 연봉(2023년 4332만원)을 꼬박 577년 모아야 한다. 반시장적인 규제가 영화보다 더한 현실을 만들어냈다. 차기 정부는 부동산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며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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