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경제학자인 장용성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임금체계 개편 없는 정년 연장은 안 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처럼 경직적 고용시장에서 정년만 연장하면 고령 근로자의 고임금이 지속돼 청년 일자리 창출에 역효과가 날 것이란 우려에서다.
물론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연공급제(호봉제)인 한국의 임금체계에서 덜컥 정년만 연장하면 예상되는 부작용으로 줄곧 제기된 문제다. 그러나 국민연금 개혁으로 정치권의 정년 연장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거시·노동 분야 석학이 “호봉제를 유지하는 정년 연장을 할 바에는 차라리 하지 말라”고 직설 화법을 쓴 것은 현시점에서 무게감이 실린다.
장 위원의 지적대로 연공급제는 우리 노동시장의 최대 난제다. 대·중소기업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저년차·고년차 직원 간 과도한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바로 연공급제다. 한국의 근속연수 1년 차 미만과 30년 이상 근로자 간 임금 격차는 세 배에 달한다. 우리처럼 노동 경직성이 강한 독일도 두 배 안팎에 그친다.
이런 상태에서 정년 연장만 하면 양극화 현상은 더 심화할 게 뻔하다. 임금 삭감 없이 정년을 65세로 늘리면 60~64세 정규직 근로자가 모두 적용 대상이 되는 도입 5년 차에는 추가 인건비가 3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고용 축소가 불가피하다.
정년 연장이란 접근법 자체가 문제다. 퇴직 후 재고용 형태로 고용은 유지하는 대신 임금은 깎는 고용 연장이 맞다.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 중심으로 개편해야 하는 작업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연공 서열의 원조 격인 일본 도요타도 이미 2021년 호봉제를 폐지했다. 임금체계 개편은 결국 우리 사회의 거대 기득권으로 군림하고 있는 노동계와의 싸움이다. 노조 눈치만 보고 비위만 맞추려는 정치 세력에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미래 주역인 청년 편에서 노동계와 맞서고 타협을 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