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남시청 앞에서 지난 16일 한국전력의 초고압직류 송전선로(HVDC) 건설본부장이 1인 시위를 벌였다. 그의 손에는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전력 공급이 시급합니다”라고 쓰인 팻말이 들려 있었다. 다음날에는 같은 본부의 다른 간부가 그 자리를 지켰다. 다른 임직원도 돌아가며 하남시와 시민들을 향한 호소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오죽 답답했으면 공기업 직원들이 시청 앞에서 릴레이 시위에 나섰을까 혀를 차게 된다.
하남시는 동서울변전소 증설과 옥내화 인허가를 1년 넘게 내주지 않고 있다. 이 사업은 강원·경북 지역 화력·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동해안~수도권 HVDC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송전선이 완성돼도 동서울변전소 증설이 이뤄지지 않으면 수도권에서 전력을 쓸 수 없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전력 수요는 폭증하는데, 지방자치단체가 국가 경쟁력 하락은 나 몰라라 하면서 주민들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막대한 투자를 한 동해안 발전소들을 놀릴 수밖에 없고 한전은 전력 구매에 연간 3000억원의 추가 비용을 들여야 한다니 사회적 손실 역시 막심하다.
더구나 하남시는 “증설 불허 처분은 부당하다”는 경기도의 행정심판 결과마저 넉 달째 무시하고 있다. 주민들이 전자파 발생과 소음을 걱정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보다 낮은 수준이고 옥내화 땐 기존보다 전자파가 55~60% 감소한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하남시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주민을 설득해야 할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남시장은 중소기업청장을 지내는 등 오랜 기간 공직 생활을 하고 보수 정당의 정책위원회 의장까지 한 인물이다. 누구보다 국가 전력망 확충의 중요성을 잘 아는 지자체장일 텐데 ‘님비 행정’을 벗어나지 못하니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