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한미군 약 2만8500명 가운데 4500명을 괌 등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외신(WSJ) 보도가 나왔다. 육군 2만 명, 공군 8000명, 특수군 500명 가운데 주로 육군이 이전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우리 국방부는 “한·미 간 논의된 게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미 국방부는 “오늘은 발표할 것이 없다”며 검토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인계철선’ 역할을 하는 주한미군이 일부라도 철수하면 우리 안보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 세력 구도에 일대 파장이 불가피하다. 우크라이나 파병 이후 러시아의 도움으로 핵·미사일은 물론 재래식 전력 수준까지 높아진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과 동시에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미군 지휘관들도 “주한미군 감축은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키운다”고 경고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이 방위비 재협상의 지렛대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왜 우리가 부유한 나라를 방어해야 하느냐”며 방위비와 연계한 주한미군 조정을 시사했다. 하지만 주한미군 철수가 단순한 협상 수단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억제를 최우선 안보 과제로 삼고 있어서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최근 한국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떠 있는 항공모함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러면서 “주한미군은 북한을 격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며 “인도·태평양 역내 작전과 활동에도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견제를 위해 주한미군을 활용하는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을 예고한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에서 한발 더 나아가 중국 포위망에 한국의 직접적인 참여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한·미동맹의 실질적 발전을 앞세워 미·중 사이에서 확실하게 자국을 선택하라는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차기 정부로서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공간이 사라지는, 난처한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지형이 생각보다 빨리, 그것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