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공의가 대거 재취업한 1·2차 병원을 통한 실손보험금 지급액이 지난해 사상 처음 8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3차 병원(상급종합병원)이 전년에 비해 445억원 감소했지만 1차 병원(의원급)은 2999억원, 2차 병원(병원·종합병원)은 5268억원 늘어났다. 한경이 5대 손해보험사의 지급액을 분석한 결과다. 사직 전공의들의 재취업이 비급여 과잉 진료를 심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잉 진료를 부른다고 의대 증원을 반대한 전공의들이 과잉 진료 현장에서 단맛부터 배운 것 아니냐는 얘기다.
물론 3차 병원 대신 1, 2차 병원을 찾은 환자가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지급액 증가분 7822억원 중 비급여가 4539억원에 달하는 건 그만큼 과잉 진료도 늘어났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비급여 관련 지급액만 6조원에 육박한다. 이런 실손보험발(發) 비급여 시장의 급격한 팽창이 부른 폐해는 한둘이 아니다. 일부 의료인과 환자의 도덕적 해이 조장을 넘어 건강보험 재정 악화와 필수의료 붕괴를 재촉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보험료의 급격한 인상을 불러 선량한 가입자만 손해를 보는 것 역시 문제다. 실손보험 개혁이 이뤄지면 보험료 30~50% 절감 효과가 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추산이다. 대한의사협회 등이 국민건강권 침해 등을 이유로 실손보험과 비급여 개혁에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의료계 의견을 충분히 듣되 개혁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의대생과 전공의도 하루빨리 돌아와야 한다. 2026학년도 의대 증원 0명을 양보받고도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철회를 복귀 조건으로 내건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주장이다.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려는 정책을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백지화하라는 것인가. 큰 틀은 의료계가 그동안 요구해 왔던 것이고 설혹 문제가 있다면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조정하면 될 일이다. 수업을 듣는 학생은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고 매도하거나 복귀를 호소하는 학장·교수들을 비아냥대는 모습을 보면 우리 의료계의 미래가 참으로 암울하다. 이제는 양식 있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