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힘을 보태기 위해 어제 미국으로 출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에 이어 재계 인사로는 세 번째로 측면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내일 데드라인을 앞두고 민관이 협상 타결에 총력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워싱턴DC에 먼저 도착한 이 회장은 우리 측 협상 카드로 미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 및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 기술 협력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입국한 김 부회장은 조선산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 제안을 구체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마스가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정 회장도 워싱턴DC에 도착하면 적극적인 협상단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제철소 건설 등 현대차그룹의 210억달러 투자는 우리 정부의 대미 투자안 중 가장 큰 규모다.
정부는 미국 측을 상대로 막바지 협상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은 우리 측에 “최선의, 최종적인 협상안을 테이블에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제시한 ‘1000억달러+α’ 규모의 대미 투자안이 자신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유럽연합(EU)이 60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상황에서 우리 제안이 성에 차지 않을 순 있지만 그렇다고 투자액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 실정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미국의 상호관세 25% 부과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우리의 제2 수출국이며, 자동차와 반도체는 양대 주력 수출 품목이다. 이미 자동차 25% 관세로 일본과 EU(15% 합의)에 비해 불리한 상황에 놓인 데다 다음달 반도체에도 품목별 관세가 부과된다면 그 충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이번 협상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분수령이다. 최소한 일본과 EU가 합의한 15% 수준의 관세율이라도 얻어내야 한다. 재계 총수들의 창의적인 투자 제안과 정부의 끈질긴 협상 노력이 시너지를 발휘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트럼프는 추상적인 것보다 구체적인 투자나 협력 방안을 선호한다. 이번 협상에서 재계 총수들의 지원 사격이 성공적인 타결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