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과 DL그룹이 합작해 설립한 여천NCC가 업황 부진과 재무구조 악화로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양대 주주 간 의견 충돌로 3100억원 규모의 운영자금 조달이 불투명해지면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번 사태는 비단 특정 기업만의 일이 아니라 장기간 누적된 석유화학산업 전체의 구조적 문제가 터져 나온 것이어서 더 심각하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글로벌 수요 부진과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최근 3년간 중국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에서만 국내 전체 생산능력의 200% 수준인 2500만t의 석유화학 설비가 증설됐다.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솔루션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석유화학 부문이 줄줄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현실은 이런 구조적 위기를 방증한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향후 3년간 1500만t가량의 신규 공장이 가동에 들어가면서 상당 기간 공급 과잉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3년 내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절반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를 막기 위해 여수 대산 울산 등 주요 석유화학 단지 내 나프타분해시설(NCC)의 24% 정도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제언을 정부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공장 몇 개를 문 닫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반을 재편해야 할 상황이란 점을 경고한 것이다.
이런 초대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기업들의 자구책만으로는 부족하다. 고부가가치 사업 중심으로 재편을 추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노조가 고용 보장까지 요구하면 자율적인 구조조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해 12월 산업 재편 로드맵을 발표한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제는 불가피하지만 석유화학 공장 통폐합 방안을 제시하고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 지정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 당 대표 시절 울산·여수·서산(석유화학)과 포항·광양·당진(철강)에 대해 위기대응특별지역 지정을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골든타임’이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