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특별 부대표인 세스 베일리 국무부 동아태국 부차관보 대행이 2018년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을 언급하며 “우리는 김여정의 최근 담화를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에 관여할 의지가 분명하다고도 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말 미국을 겨냥해 “새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다른 접촉 출로를 모색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담화를 발표했다. ‘불가역적인 핵보유국 지위와 그 능력’ ‘근본적으로 달라진 지정학적 환경’ 등을 인정해달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 전날 내놓은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담화와는 확연히 달랐다. ‘한국 패싱’ 속에 미국과 북한의 직접 접촉이 이뤄지고, 양측이 비핵화가 아니라 북핵 군축·동결을 목표로 한 ‘스몰딜’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취임 후 여러 차례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부르며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을 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의 성향상 김정은과의 정상회담과 북핵 문제 타결이라는 성과를 위해 북한이 내건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통미봉남’(미국과는 대화하고, 한국과의 대화는 봉한다) 전략을 전격 수용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런 와중에 한·미는 18일 시작되는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의 절반을 다음달로 연기하기로 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연합훈련 조정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건의한 후 벌어진 일이다. UFS 공동 발표문에선 ‘북한, 위협, 도발’이라는 표현도 빠졌다. 정 장관은 취임 후 통일부의 북한 주민 접촉 제한 지침을 폐지하고 개성공단 재가동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등 연일 대북 유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런 ‘과속’이 오히려 미·북 대화 재개 국면에서 우리를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