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어제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어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등을 핵심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국민의힘도 법안 심사에 동참했지만 경영 현실을 반영한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정안을 완화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대로 법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우리 기업에 불어닥칠 투자 위축과 소송 남발의 부작용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번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 것을 핵심으로 한다.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전환하고 전자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사내·사외이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일명 ‘3% 룰’도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 4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기존 안보다 더욱 강력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경제계는 막판까지 ‘경영 판단 원칙’의 명문화와 소송 부담 완화를 절박하게 요구했다. 기업 이사나 임원이 관리자의 주의를 다해 권한 내 행위를 했다면, 그 행위로 인해 회사가 손해를 입었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경영 판단 원칙’을 개정안에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또한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그냥 ‘주주’가 아니라 ‘전체 주주’로 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 모든 요구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면 소액주주들의 이사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및 배임 소송이 급증할 것이 자명하다. 이는 행동주의 펀드의 무분별한 경영권 공격으로 이어져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것이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 투자나 인수합병 등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시행하면서 부작용이 있으면 수정·보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언제, 어떻게 보완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계와 산업계가 부작용을 호소하며 그토록 반대하는 기업 규제가 기어이 시행되는 현실을 보면서 좌절과 절망감을 느끼는 기업인들이 한둘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