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미 사건 ‘입건 대신 즉심·훈방’… 상식이 통할 공간도 있어야

7 hours ago 1

ⓒ뉴시스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마트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인 60대 여성이 소시지를 훔치다 걸린 사건이 있었다. 그는 단둘이 사는 손녀가 소시지를 먹고 싶어 했지만 살 돈이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피해액이 크지 않아 마트 주인도 처벌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얼마 전 경찰 경미범죄심사위원회에 회부돼 형사입건 되지 않고 전과가 남지 않는 즉결심판을 통해 소액 벌금형으로 종결됐다. 이처럼 경미범죄심사위에 회부돼 즉심이나 훈방 처리되는 생계형 사건이 해마다 늘고 있다. 올 1월엔 580명이 회부돼 전년 동월보다 70% 넘게 증가했다.

올 들어 회부된 사건이 크게 늘어난 건 지난해 ‘초코파이 취식’ 사건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류회사 경비원이 회사 냉장고에서 초코파이 등 1050원어치 간식을 꺼내 먹은 걸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만 원을 선고받았던 사건이다. 사회적 논란 끝에 항소심 재판부가 결국 무죄를 선고하긴 했지만, 검경의 사건 처리가 얼마나 기계적으로 이뤄지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일각에선 작은 범죄라고 감경해주면 법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미한 범죄를 선처하는 제도가 상습범들이 법망을 피하는 데 악용되지 않도록 기준을 엄격히 적용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가벼운 실수나 순간적인 판단 착오를 문제 삼아 평범한 시민을 법정에 세우는 건 공권력의 남용이자 낭비라는 지적이 많다. 직장에서 1050원어치 간식을 허락 없이 먹었다는 이유로 2년 가까이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고통받아야 한다면 상식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초코파이 사건에 무죄를 선고했던 항소심 판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일본, 영국 등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경미한 범죄일 땐 사과와 손해배상 등을 통해 당사자끼리 합의하도록 중재하고 공권력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전과자 양산을 방지하면서도 수사기관이 이런 사건에 불필요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도 경미범죄심사위 같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검찰도 기소유예 등을 통해 소모적인 법정 공방을 줄여야 한다. 법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상식으로 해결할 일은 상식에 맡기는 것이 성숙한 법치주의다.

사설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은퇴 레시피

    은퇴 레시피

  • 양정무의 미술과 경제

    양정무의 미술과 경제

  •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