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이 헝가리 데브레첸 인근에 유럽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는 한경 보도(7월 1일자 A1, 4, 5면)다. 건설 비용이 11조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생산시설로 매년 전기차 120만~160만대분의 배터리를 쏟아내게 된다. 2023년만 해도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60.4%에 달했다. 하지만 올해 1분기엔 이 비중이 37.2%까지 내려왔다. CATL 등 중국 배터리 업체의 거센 공세 탓이다. 헝가리 공장까지 가세하면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중 배터리 기업의 운명은 자금 동원력에서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ATL은 데브레첸 공장 건설 대금의 절반이 넘는 6조2000억원(46억달러)을 홍콩 증시 이중 상장과 유상증자로 조달했다. 선전 증시를 통해 이 회사에 투자한 기존 주주의 지분이 희석됨에도 중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CATL은 정부로부터 매년 1조원이 넘는 직접 보조금과 투자액의 175%에 달하는 연구개발(R&D) 세액공제 혜택을 받고 있다. 한국 기업은 정반대 상황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자금줄이 말라붙어 꼭 필요한 투자도 못 하고 있다.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를 희석할 수 있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이나 대규모 유상증자는 시도할 분위기가 아니다. 정부의 지원도 없다시피 하다. 첨단산업 세액공제는 영업이익을 내야 받을 수 있어, 적자에 빠진 배터리 업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도입을 위한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배터리와 전기차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을 참고하겠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배터리는 한국의 주력 산업 중 하나로 전자, 자동차, 소재, 화학 등 다양한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배터리가 흔들리면 여러 업종의 공급망이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 IRA 도입을 서두르고, 지원 규모도 중국과 경쟁이 가능할 정도로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배터리산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