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가경정예산 1조4600억원을 투입해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3000개를 확보했다는 소식이다. 당초 계획했던 1만 개보다 더 많은 물량을 구매한다. 네이버클라우드와 NHN클라우드, 카카오 등 3개사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GPU를 사들이고, 이를 국내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이 나눠서 사용하기로 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 기업과 연구소 등이 보유한 GPU는 2000개 안팎에 불과하다. 미국 빅테크 한 곳이 수십 만 개 GPU를 활용 중인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기업이 AI 플랫폼을 개발하고 싶어도 GPU가 없어 사업의 진척이 더뎠다. 이번에 확보한 1만3000개가 충분한 물량은 아니지만, AI 분야 R&D(연구개발) 박차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노력을 평가할 만 하다.
하지만 ‘소버린 AI’ 비전을 발표한 이재명 정부로선 이제 첫발을 뗐을 뿐이다. 걸림돌이 되는 규제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어렵게 구한 GPU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특히 ‘AI산업의 쌀’로 불리는 데이터 관련 규제를 전향적으로 풀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AI 학습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이용하려면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치적 견해, 건강 등의 민감정보는 수집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2020년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가명 정보 개념이 도입됐지만, 통계·연구·공익 목적으로 용도가 제한돼 있다. 가명 정보를 상업용 AI에도 활용하게 하는 등의 규제 개선이 이뤄져야 ‘한국판 딥시크’의 출현도 기대할 수 있다. AI 선도국인 미국, 중국과 비교하더라도 우리 규제는 깐깐하고 과도하다.
전기를 많이 쓰는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전력망을 개선하는 등 인프라 구축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지금도 수도권에선 전기를 공급받지 못해 데이터센터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앞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