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3일 첫 시행된 석유 최고가격은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의 평균 변동률을 반영해 2주마다 산정한다. 이 같은 ‘국제 유가 연동’ 원칙에 따라 이번에 경유는 L당 300원, 등유는 100원, 휘발유는 20원의 인상 요인이 생겼다. 하지만 정부는 8일 미국과 이란의 휴전 발표로 유가가 급락한 점과 석유 가격이 민생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가격 동결을 결정했다.
문제는 고유가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부른 기름값 동결이 유류 소비 억제 효과를 떨어뜨리고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첫 3주간 국내 주유소의 기름 소비는 거의 줄지 않았다. 오히려 휘발유 소비는 소폭 늘었다. 정부 개입으로 에너지 절약 유인이 약해진 것이다. 기름을 많이 먹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승용차, 고가 스포츠카 이용자가 석유 가격 통제로 더 큰 혜택을 보는 문제도 있다.
정부는 중동 전쟁 발발 초기 선제적으로 석유 가격을 통제해 기름값 폭등을 막았지만, 청구서가 갈수록 쌓이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분이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지 못하면 정유사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 손해를 보전해 주는 데 세금이 들어간다. 6개월간 이 제도를 운용하는 데 약 4조200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고유가가 장기화하거나 국제 유가와 괴리가 커질수록 재정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12일 미국과 이란의 첫 휴전 협상이 결렬되면서 중동 정세가 안갯속에 다시 빠져들었다. 이란의 핵 개발 포기,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 등 휴전 협상 테이블에 난제가 많아 호르무즈 해협의 경색이 장기화하고 고유가가 지속될 수 있는 상황이다. 석유 최고가격은 비상시에 예외적으로 꺼내 쓰는 조치다. 장기간 남용하면 시장은 제 기능을 잃고 세금은 허비된다. 가격을 통한 시장의 수요 억제 기능이 사라지면 공공기관 차량 2부제 등을 시행하더라도 에너지 수요 관리에 한계가 있다.
이번 중동 위기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다른 점은 재정 여력 등 각국의 위기 대응력이 과거에 비해 약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재정 형편이 그나마 나아 대규모 위기 대응 예산을 편성하고 석유 최고가격 통제까지 동시에 할 수 있었지만, 나라 곳간이 흔들리면 더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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