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0.5 안팎을 유지하던 구인배수가 곤두박질친 건 계엄·탄핵 여파로 내수 침체가 가속화된 데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으로 대외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기업들이 채용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과 건설업, 도소매업 등에서 경기 둔화가 두드러진 탓에 일자리 감소세는 가팔라지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건 청년들의 선호도가 높고 안정된 직장으로 꼽히는 대기업과 공공기관마저 일자리가 크게 줄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이 포함된 300인 이상 사업체의 취업자는 지난해 5만8000명 늘어 6년 만에 증가 폭이 가장 작았다. 전체 공공기관의 정규직 채용 인원은 5년 새 반 토막 나 지난해 처음 2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질 좋은 청년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는 올해 취업자 증가 폭을 12만 명으로 내다봤지만 정국 불안이 장기화되고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되면서 이마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6∼1.7%로 낮춘 데 이어 11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0%에서 1.6%로 대폭 조정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선 300인 이상 기업의 54%가 ‘채용을 축소하겠다’고 했다.이러니 구직 자체를 포기하고 ‘그냥 쉰다’는 청년이 42만 명을 넘어서도 이상할 게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고용 한파가 확산되지 않도록 조속히 추경 규모와 시기를 확정해야 한다. 공공기관 체험형 인턴 등을 늘리는 땜질 처방조차도 지금으로선 아쉬운 판이다. 아울러 기업들이 채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경직된 고용 환경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 민간·공공 가릴 것 없이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청년들이 중소기업에서 경력 개발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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