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에이전트’는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일부 금융회사는 이미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상품 수익성이나 리스크를 예측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고객 응대에도 적용하고 있다. 헬스케어산업에서는 진료 기록과 영상 데이터, 환자 상태 정보를 종합해 진단 및 치료 옵션을 제안하거나 의료진의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형태로 AI 에이전트가 현장에 도입되고 있다. 내부 업무지원 플랫폼에도 AI 에이전트가 속속 적용되며 이를 ‘미래의 팀원’으로 소개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어떤 에이전트를 도입해야 할지,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도 여전하다. 기술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지만, 일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아 많은 기업이 파일럿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전환점에서 조직이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AI 에이전트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가?”
왜 AI가 ‘일 못하는 동료’가 되는가
AI 에이전트를 도입하려는 많은 조직은 비슷한 지점에서 부딪힌다. 첫째, 데이터 단절 문제다. 예컨대 AI 에이전트가 비서처럼 일하려면 이메일, 캘린더, 업무 문서 등 여러 자산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안 정책으로 인해 접근이 제한되고, 필요한 데이터 역시 여러 시스템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정보가 파편화된 상태에선 에이전트가 아무리 뛰어나도 ‘맥락을 읽고 제안하는 동료’가 되기는 어렵다.
둘째, 기존 시스템과의 통합 한계다. 대부분의 조직이 이미 전사적자원관리(ERP), 고객관리(CRM) 등 핵심 전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AI 에이전트를 유기적으로 연동하기에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아예 연동 자체가 설계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노후화된 정보기술(IT) 환경을 가진 조직일수록 에이전트를 파일럿 이상의 규모로 확장하기 어려운 구조적 병목을 안고 있다.
셋째는 구성원의 AI 리터러시다. 새로운 도구가 도입되더라도 실제 사용자가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왜 써야 하는지 체감하지 못하면 실효성은 떨어진다. “기존 방식대로 일하는 게 더 편하다”, “써보긴 했는데, 잘 모르겠다”는 현장의 반응은 생각보다 흔하다. 기술은 들어왔지만,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AI 에이전트를 진짜 동료로 만들기 위한 조직 내부의 설계와 수용 역량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 아닌 역할로 설계하라
최근 선도 기업들은 AI 에이전트를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조직 내 역할 단위’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상품을 기획하는 AI, 리스크를 판단하는 AI, 고객을 응대하는 AI 등 에이전트가 실제 구성원처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며 하나의 팀 구조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방식이다.
더 나아가 AI 간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조직 전체가 학습하고 판단하는 미래를 실험하는 기업도 있다. 예컨대 전략을 수립하는 AI와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는 AI가 서로 대화하며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방식이다. 단일 기능 자동화를 넘어서 AI 간 협업을 통한 복합적 의사결정 구조로 진화하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조직일수록 AI 에이전트를 ‘업무 방식을 혁신하는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AI가 고객별 데이터를 선제적으로 분석해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실무자는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AI는 단순 반복 업무를 덜어주는 수준을 넘어 업무의 출발선을 먼저 정리하고, 사람은 판단과 실행에 집중하는 구조로 흐름 자체가 재설계되고 있다. 더 똑똑한 AI를 보유한 기업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시장 변화에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여기에 실린다. 핵심은 ‘AI를 도입했는가’가 아니라 ‘AI를 어디에, 어떤 역할로 앉혔는가’다. 설계의 깊이가 곧 경쟁력의 깊이로 연결되고 있다.
함께 일할 준비가 돼 있는가
AI 에이전트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개념이 아니다. 이미 산업 현장의 곳곳에서 사람과 나란히 일하는 새로운 동료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똑같은 기술이라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맥락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우리는 AI 에이전트를 도입했는가?”가 아니라 “우리 조직은 AI 에이전트와 함께 일할 준비가 돼 있는가?”이다. 기술을 앞세우기 전에 우리는 AI와 협업할 수 있는 일의 방식, 신뢰의 구조, 설계의 철학을 갖췄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