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 구기동 쪽으로 올라 승가사∼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대남문을 거쳐 구기동으로 내려왔어요. 그냥 말없이 걷다가 커피 한잔하고 내려왔죠. 그런데 산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봤어요. 다람쥐가 우리에게 길을 안내했죠. 먹다 남은 인절미 부스러기를 던져 주자 까마귀와 비둘기가 거리낌없이 와서 쪼아 먹었어요.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딸 학교와 우리 집은 성냥갑보다 작았죠. 어느 순간 딸이 입시 경쟁에서 물러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매주 토요일 모녀의 산행은 딸의 고3 때까지 이어졌다. 박 씨는 “딸이 조급함을 내려놓고 여유로움을 가졌다. 원래 체력이 좋았는데 더 활기가 넘쳤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며 학교생활을 잘 버텼다”고 했다. 딸은 대학에 진학했고, 최근 모 대학 생명공학부 교수가 됐다. 당시 개인적인 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던 박 씨도 북한산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회복했다.
“전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싫어했어요. 체력이 약했죠. 처음 딸하고 북한산에 갔을 때 기다시피 올라갔어요. 딸은 올라가다 제가 안 보이면 다시 내려왔다가 함께 올라가기를 반복했죠. 당시 제 혈압이 185까지 올랐고, 목디스크 때문에 오른팔 마비 증세까지 왔죠. 아이들이 학교 갔을 때 저 혼자 북한산을 돌아다녔어요. 근 100일간 산을 헤맸죠. 그때 고민도 많이 했지만, 건강도 찾았어요.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더 강해졌죠.”박 씨는 2013년 10월 지리산에 오른 것을 계기로 전국 명산 탐방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당시 옮긴 회사에서 단체 산행으로 지리산 ‘성중(성삼재에서 중산리) 종주’에 나섰다. 그는 “1박 2일 일정으로 산을 탔는데 산 위에서 바라본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민가는 보이지 않고 사방으로 산만 보였다. 동해와 남해, 서쪽으로 광주 무등산까지…. 산지킴이 한 분이 ‘3대가 덕을 쌓아야 이런 맑은 날씨에 전국을 조망할 수 있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또 “책에서만 보던 금강초롱꽃 같은 고산 야생화를 지리산에서 실물로 처음 만난 것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고 했다.
“지리산에 처음 올랐을 때가 모교인 고려대 방문의 날이었죠. 고려대 입학 30주년 기념이라 꼭 가야 했는데…. 친구들에게는 ‘지리산에 와 있다. 못 가서 미안하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남겼죠. 그해 말 고려대 83(83학번) 산우회 회원이 ‘2014년 지리산에 간다’고 했고, 저도 다시 지리산에 오르고 싶어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게 됐습니다.”
박 씨는 그때부터 고려대 83 산우회 정기 산행을 함께하며 전국 명산을 올랐다. 매월 첫째 토요일에는 원거리 산행으로 회원들과 버스를 타고 전국 산으로 향하고, 셋째 토요일엔 근교 산행으로 수도권 산을 오르고 있다. 평일에는 파킨슨병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돌보며, 어머니 집(인천) 근처 듬배산과 오봉산 왕복 2시간 코스를 주 4회 이상 오르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뛰어놀던 산”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인천에서 결혼한 뒤에도 살다가 큰딸이 중학교 1학년 때 부암동으로 이사했다.산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 전문가 과정에도 관심을 가졌다. 한국트레킹연맹에서 숲길등산지도사(산림청) 자격증을 취득했고, 국립공원 탐방객을 안내하는 자연환경해설사(환경부) 자격증도 땄다. 그는 “언젠가 산을 찾은 사람들을 안내하며 살기 위해 땄다”고 했다.박 씨는 “북한산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내 솔푸드(soul food)”라고 했다. 부암동에 살 때 눈앞에 펼쳐진 북한산을 ‘우리 집 커다란 정원’으로 여기며 살았다고 했다.
“산은 저를 치료해 준 의사였어요. 몸과 마음의 병도 산이 고쳐 줬죠. 빨리 가지 않아도 되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 속을 그냥 걷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그럼, 심신이 건강해집니다.”
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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