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중략)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김수영(1921∼1968)
봄밤에는 대화가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과 둘러앉아 백목련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싶다. 오래전 딱 한 번, 이런 시간을 경험한 후 봄마다 로망이 됐다. 로망은 실현되기 어려운지, 그 후로는 이런 호사를 누릴 기회가 없었다. 사람, 밤, 봄, 술이 두루 편해야 가능한 경험일 테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봄밤엔 꽃나무에도, 막막한 미래에도 건배할 수 있을 것 같다. 봄밤엔 뭔가가 있다. 봄밤엔 괴로움도 기쁨도 두 배, 초조함도 외로움도 두 배가 된다. 김수영의 이 시를 자꾸 되뇌며 멀미 나는 이 생의 감각을 달래야 한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일상이 내 고통과 상관없이 자명하게 흐른다 해도, 초조해하지 말고 당황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얼마 전 불안과 슬픔에 빠져 울고 있는 친구에게 이 시를 건넸다. 인생이 앞으로 어떤 패를 내민다 해도 두려워하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었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우리는 앞날을 알 수 없다. 아득하게, 그 아득함으로 더듬더듬 나아갈 수밖에.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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